[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수필] 달항아리 - 이다온






삽화=정윤성 기자

 


삽화=정윤성 기자


진열대 위로 둥실 달이 떠오른다. 은은한 불빛이 바닥에 고인다. 조명을 받은 항아리는 방금 목욕하고 나온 아낙네 같다. 천의무봉의 살결이 백옥처럼 희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데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자세히 보면 달항아리는 좌우균형이 맞지 않는 비대칭이다. 보름달이 약간의 기울기를 가진 것처럼.

가슴이 사라졌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왼쪽 가슴을 확인했다. 불룩하게 솟아있던 자리가 분화구처럼 푹 꺼져 있다. 움푹 팬 곳에 낯선 어둠이 만져졌다. 두꺼운 밴드가 선홍색 칼자국을 애써 가렸다. 와락, 울음이 밀려왔다. 재빨리 환자복을 내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덮었다.

이태 전이었다. 부산스럽게 외출준비를 하고 있을 때 왼쪽 가슴에서 심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다. 의사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벚꽃이 만발했던 어느 봄 날, 그렇게 암은 내게로 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

임파선으로 퍼진 암 덩어리 크기를 작게 하고 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선 먼저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일차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수술실 안쪽의 긴 복도를 따라갔다. 암 환자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공간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었다. 민둥산처럼 머리를 깎은 환자들이 침대마다 누워 있었다.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하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이건 꿈이라고, 잠시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현실은 결코 꿈이 되지 않았다.

시부모를 모시는 맏며느리였지만 고부간에 큰 갈등은 없었다. 남편은 자상했고 어머님은 집안일에 서툰 나를 딸처럼 대해 주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끔씩 동서들과의 갈등이나 속상한 일이 더러 있었지만 크게 상심하거나 어려운 일은 겪지 않았다. 아이 둘도 잘 자라주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 내게 신은 암이라는 시련을 툭! 던져주었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돌멩이 던지듯 무심하게.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이름이 불리어졌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몇 개의 액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보여주면서 의례적인 설명을 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닐까?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 도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맞았던 것일까? 항암제가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준다는 조형제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이 흘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자줏빛 종이상자 안에 있던 항암제가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갔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한 움큼 검은 시체들이 손아귀에 쥐어졌다.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카락은 책상 위며 화장대, 거실탁자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지마저도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항암치료는 마흔 살 나이에 생리를 멈추게 했고, 모든 일상의 시간들을 정지시켰으며, 까마득한 벼랑 끝에 나를 세워놓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날 즈음 왼쪽 유방절개수술을 했다. 임파선을 제거한 팔은 조금만 무리해도 붓고 아팠다. 나이가 젊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두려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했다. 때론 침대 난간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죽고 싶다며 야단을 피웠고 어떤 날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다섯 개가 넘는 피 주머니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놓아 버렸다.

불행은 먼 나라의 것이라 생각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남의 고난은 그냥 타인의 일일 뿐이었다. 어느 나라에선 지진이 일어났다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기아가 넘쳐난다고 해도 관심 밖의 일들이었다. 쇼핑을 하고 몸매를 가꾸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그런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 믿었다. 가끔씩 현기증 같은 게 찾아왔지만 그건 내가 너무 행복해서 느껴지는 감정 같은 거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불행의 씨앗이 조금씩 내 몸에 똬리를 틀기 시작하는 것도 모르고.

아마조네스는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이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트로이를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특수부대였다. 아마조네스의 ‘아’는 ‘없다’는 뜻이며 ‘조네스’는 ‘유방’이라는 뜻이다. 즉, 유방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 부족은 활을 쏘는데 오른쪽 유방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것을 미련 없이 제거했다. 조국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나의 전생은 아마조네스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활시위를 대고 적의 심장을 바라보던. 그래서 한 쪽 가슴을 도려내야했는지도. 행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걸까. 암은 무의미한 일상에 함몰된 내게 삶을 향해 제대로 활시위를 당기라며 가슴을 도려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르르 떨리는 그 활이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 벅차긴 했지만.

달항아리는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도자기다. 둥글고 커다란 모습이 달덩어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가 사오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항아리를 제작하려면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서로 이어 붙여야 했다. 그래서 접합 부위가 약간 뒤틀린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도공들은 이것을 칼로 깎아 내거나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다. 인위적인 힘을 가해서 정교하고 둥글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비대칭인 상태 그대로 둔 것이다.

수술결과는 좋았다.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몇 번의 작은 수술과 치료가 있었지만 처음의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벼랑 끝에서 아스라하게 버텼던 지난날의 흔적은 가족들의 관심으로 조금씩 치유되어져 갔다.

전시대 위로 떠오른 달을 쳐다본다. 어린 시절 초가지붕 위의 박처럼 푸근하다. 문득 항아리 속의 달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밀물처럼 고요하게 달이 들어찬다. 보름달이면서 비대칭인, 한 쪽이 약간 기울어져 슬픈 달, 그러나 어떤 대칭의 사물보다도 완벽한 구형이다. 달을 품은 내가 어느새 달항아리가 된다. 따뜻한 달무리가 빈 가슴에 둥글게 번진다.

/이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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