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껍데기 / 장미숙

 

 

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노르스름한 색깔에 윤기가 돌고 냄새만으로도 감칠맛이 느껴졌다. 한 숟가락 크게 떴으나 몹시 뜨거웠다. 숟가락을 입술 가까이 대고 호호 불었다. 냄새는 날숨에 밀려갔다가 급히 되돌아왔다. 들숨으로 몰려든 냄새는 후각을 자극했다. 바다의 쌉싸름함이었다. 하지만 그건 낭만과 청량함을 품고 있진 않았다. 바람결에 실려 온 바다의 까칠한 겉살이나 햇살과 몸을 섞는 후텁지근하고 들큼한 것도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의 뼈와 오랜 시간에서 비어져 나온 진하고 곡진한 냄새였다.

바다의 속살이 입안에서 씹혔다. 눈물 맛이 났다. 아니, 고독한 맛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이 뭉쳐진, 응고된 맛은 사진 속에서 보았던 바다 여인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바닷물에 잠긴 여에 앉아있었다. 그녀를 품고 있는 바다는 파란색도 에메랄드빛도 아니었다. 회색 바탕에 거친 흰색이 섞인 질척하고 불분명한 색이었다. 굵은 붓으로 터치해놓은 듯 바다는 건드리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마치, 여인이 뱉은 가쁜 숨이 꿈틀거리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녀는 물질을 끝내고 바닷속에서 금방 올라온 듯했다. 앉은 자세가 바람을 닮아있었다. 마라톤을 끝낸 달리기 선수가 마지막 발걸음을 땅에 찍고는 힘이 방전되어버린 모습 같기도 했다. 심장의 헐떡임만으로 존재를 표현하는 그 절정의 순간처럼 그녀의 쉼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쪽 다리를 바위 위에 세우고 다른 다리는 바닷물에 길게 뻗은 채였다. 세운 다리 위에 왼팔을 놓아두고 오른팔로는 망사리 테두리를 야무지게 잡고 있었다. 물기가 번들거리는 고무 옷 위로 햇빛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수경을 쓴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모습은 온몸의 기를 놓아버린 듯 기진맥진해 보였다.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와 바다의 물결과 합류했다.

깊은 숨소리는 물살에서 놓여났다는 안도의 숨일 터였다. 해산물이 가득 든 망사리를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은 돌처럼 강해 보였다. 어쩌면 그녀가 쥐고 있는 건 망사리가 아닌 바다의 무게가 아닐까 싶었다. 바닷속에서는 한없이 가벼웠을 연철이 뭍에서는 벗어버리고 싶은 멍에일지도 몰랐다.

해마다 뼈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대신, 연철의 무게를 더해야 하는 게 바다 여인의 삶이라 했다. 뭍의 여인들이 흙에 뼈를 삭히듯 바다 여인들의 뼈에는 소금기가 배어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몸에 밴 소금기는 결국 평생을 바다와 합일해야 하는 운명을 만들었을 지도. 하지만 거대한 바다는 여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나운 파도는 으르렁거리며 등을 후려치고 겨울 바다는 뜨거운 피를 굳게 했으리라.

한없이 아름답고 평온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게 바다다. 수십 갈래인 물의 길에는 곧은길도 있지만, 진창길이며 흙탕길, 돌너덜 길도 있을 터이다. 바위에 부딪히고 해초에 감기며 바다가 속살을 열어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숨을 참아야 했을까. 빗창 하나 들고 바닷속을 수없이 자맥질하며 소금기에 뼈를 절이는 시간이 그녀의 몸에 파도의 무늬로 남았을 것이다. 그 모든 걸 한 장의 사진이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에 대한 깊은 인상은 제주도 해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뛰어넘게 했다. 진한 감동은 그녀가 사는 집을 찾게 된 동기였다. 바다를 느끼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그녀를 상상하며 집에 들어선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소라껍데기였다. 집 곳곳마다 소라껍데기가 있었다. 텃밭에, 돌담 옆에, 항아리 위에, 창턱 위, 평상 위에도 바닷소리가 출렁거렸다.

소라껍데기 하나를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둥그렇게 말려들어 간 텅 빈 집 속에 응축된 시간이 잠들어있었다. 한때 바닷속에서 생명을 담았을 집 속에는 이제 바람과 햇살이 들락거렸다. 바다를 떠나온 지 오래됐음에도 짭조름한 바닷냄새가 났다. 다육식물을 담고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소라껍데기도 보였다.

바다를 끼고 있는 아담한 어촌마을은 고즈넉했다. 집 앞으로 보이는 갈대숲에서는 철새들이 파드득거리며 날아다녔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새파랗고 평화로웠다. 전형적인 바다의 모습, 평안과 안식을 주는, 가슴이 탁 트이는 물빛은 사진 속에서 본 진회색의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다.

돌담으로 둘러쳐진 아담한 집 한 모퉁이에 태왁과 망사리가 걸려 있었다. 태왁은 해녀가 수면에서 몸을 의지하거나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하는 부유 도구다. 제주도에서는 ‘물에 뜬 바가지’를 뜻하며 원래는 큰 박의 씨를 파내고 구멍을 막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박을 구경하기 힘들게 된 현재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태왁을 사용한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를 본 순간 사진 속에서와 다르게 여린 인상을 받았다. 아직 오십 대라고 했다. 해녀로서는 젊은 나이다. 햇빛과 파도에 그을려 가무잡잡했지만 선한 얼굴은 그 속을 가늠할 수 없는 바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물이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물 없이는 살 수 없다고도 했다. 어쩌면 모든 해녀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는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린 지 오래되었다며 피식 웃었다. 문득 그녀의 몸에 파도가 깃들어 사는 건 아닐까 싶었다. 파도를 탈 줄 알아야 잠수를 할 수 있을 테니 파도를 데리고 사는 건 바다에서나 뭍에서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추운 겨울에는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힘들기는 매양 마찬가지라고 했다. 해안가를 거닐다 보았던 ‘불턱’이 생각났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웠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붕이 뻥 뚫려있었다. 돌을 쌓아 둥그렇게 만든 모양으로 한가운데 불을 피울 수 있는 아궁이 비슷한 게 있었다. 요즘은 현대식 건물에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녹인다고 하지만 추위는 여전히 극복의 대상이 아니니 그냥 참고 견디는 종류의 것일지도 몰랐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파도가 출렁였다.

그날 저녁, 나 또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설핏 잠이 들었을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숨비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에 휩쓸리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한 여음이 방안을 맴돌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그건 소라껍데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수런거리는 소리는 내 의식을 바다로 몰고 갔다. 소라껍데기들이 와글와글 달그락달그락 부딪는 소리에 이끌려 몽롱한 채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바다 냄새에 잠이 깼다. 짙은 안개에 싸인 아침이 해를 품은 채 뒤척이고 있었다. 갈대숲도 숨죽인 고요한 아침이었다. 저 멀리 호수와 바다를 가로지른 도로에 차들만이 부지런히 오갔다. 금세 안개는 걷혔다. 해가 떠오르자 물빛이 흔들리고 갈대가 수런대기 시작했다. 철새들이 날아오르고 돌담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식물의 초록빛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그녀가 차린 밥상에는 죽과 김치가 전부였다. 소라알갱이에 든 깊은 바다를 나는 천천히 삼켰다. 차가움을 뛰어넘어 기어이 따뜻한 맛으로 거듭난 소라 죽에 왈칵 감동이 일었다. 그녀가 건져온 바다가 죽 그릇에 출렁이고 나는 진정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서도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2023년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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