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과 같은 / 손진숙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서녘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푸르게 돋아나는 시각. 그이와 무슨 일로 부딪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앵돌아진 마음에 돌 지난 딸아이를 둘러업고 세 들어 살고 있는 이층에서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갈 곳이 따로 없어 무작정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고향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친걸음이라 앞으로 계속 발을 내디뎠다. 왼편에서 거슬러 흐르는 형산강물이 초승달빛에 젖어 잔물결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에 눈길을 보냈다.

세파 따위는 모르는 양 평온해 보이는 물살의 강. 강물의 품은 부드럽고 깊어서 강 주변 사람들의 솟구치는 기쁨과 내려앉는 슬픔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껴안았다. 하하 웃음소리와 흑흑 울음소리가 숨죽이며 한데 어우러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뒤섞여 밤 강물 소리로 흐느끼는가도 싶었다.

강의 바닥에는 어릴 적 동무와 물놀이를 하다 떠내려 보낸 검정고무신도 잠겨 있을 것 같고, 여름 태풍에 둥둥 떠내려간 복숭아 씨앗도 썩지 않고 싹을 틔우고 싶은 열망에 부풀어 있을 것도 같다. 늘 해말간 웃음을 짓던 여덟 살 달이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가며 내질렀던 비명이 잠겨 있을 것도 같았다. 살구 꽃잎처럼 맑은 물결에 마음 싣고 싶었던 날, 곱게 접어 띄워 보낸 종이배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떠다니고 있을까.

아득하게 먼 길이었는데 걷고 또 걷는 사이에 고향 마을 어귀에 닿았다. 한 폭의 밤 풍경화를 펼친 듯이 아늑한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눈앞에 저수지가 있다. 어릴 적 동무와 함께 버드나무가 늘어선 못둑을 거닐며 우정을 속삭였던 추억이 떠오른다.

동네 한가운데로 뚫린 길 양옆에는 논밭들이 장기판처럼 이어져 있다. 마을 중간쯤에 덩그러니 앉은 동사무소가 보인다. 동사무소를 기점으로 나뉜 아랫마을과 윗마을. 윗마을 나지막한 산비탈 끝에 내가 태어나 자란 오두막집이 보였다.

할머니를 비롯해 조카까지 4대가 복작이며 살았다. 그 많던 식구들은 다 어느 곳으로 흩어진 것일까. 지금은 늙은 어머니 혼자 붙박이로 지내시는 집이다. 개밥을 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 어머니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허리를 벽에 기대고 휴식을 취하는지, 아직 잠들지 않은 전등불이 흐릿하게 졸고 있다. 조금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자취를 감추면 어머니도 고단한 하루를 잠재울 것이다.

내가 이 시각, 이 모습으로 찾아들면 어머니는 반가워하기보다 놀랄 것이 뻔하다. 기왕 여기까지 몇십 리를 걸어왔으니 그냥 들어가고 싶은 유혹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저 고요와 평안을 깨뜨릴 수야 없잖은가. 윗마을 입새 삼거리에 서서 여러 생각에 잠기었다.

은하수가 뿌린 은은한 빛이 고향집 뒤 산등성이를 감싸고 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아릿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가물가물한 어머니 방 불빛을 먼눈으로 바라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서서히 되돌렸다.

그제야 등에 업은 아이의 무게가 전해왔다. 포대기를 끌러 다시 고쳐 맸다. 그때까지 다리 아프다는 생각조차 끼어들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그네의 설움’이라는 유행가의 노랫말이 언뜻 귓가에 스쳤다. 한길로 나와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였다. 택시 한 대가 지나가다 옆에 멎었다.

내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지갑을 챙길 겨를 없이 나온 터였다. 무심한 시선으로, 차창 밖에 얼굴을 내민 기사를 보았더니 “아이를 업고 무거울 텐데 아무 걱정하지 말고 타세요.”라고 했다. 그 순간 택시기사는 날개를 달지 않은 천사였다.

어리석었던 나는 집 앞에 내려주는 천사의 연락처를 묻지 못했다. 금세 뉘우쳤지만 이미 떠나버린 인연을 수소문할 방법은 없었다. 전조등을 밝히고 힘들고 지친 이웃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그 택시기사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방에 들어가 업고 있던 아이를 내렸다. 그때까지 등에서 자고 있었는지 눈을 반짝 떴다. 아기의 눈은 한 점 그늘 없는 별빛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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