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는 멈추지 않았다 / 장미숙

 

할머니가 다시 나타난 건 거의 일 년이 지나서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상자를 가득 실은 수레가 막 도로를 건너가던 중이었다.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은 걸음이 빠르기 마련이다. 어디서 차가 나타날지 모르니 서두르려는 본능 때문이다. 하지만 수레는 아주 천천히 길을 건너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분인 줄 몰랐다. 수레가 방향을 틀어 옆으로 돌았을 때 할머니인 걸 알았다. 회색 벙거지에 팥죽색 조끼가 낯익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달라 보였다. 키는 작아지고 몸피가 줄어들었으며 무엇보다 허리가 많이 굽었다. 멀어서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없었지만 작아졌다는 건 확실했다. 행동도 느렸다. 팔팔하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천천히 길을 건너는 할머니의 시간은 멈춘 듯 위태해 보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가 수레를 끄는 걸 몇 번 본 적은 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했으며 도시의 골목을 누비던 분이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날까 싶을 만큼 억척이었다. 폐지를 잔뜩 싣고 길을 건너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하지만 또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생각하곤 했다. 특히 비 오는 날, 비의 무게까지 짊어진 노구를 보는 건 편치 않았다.

한번은 할머니를 집으로 모신 적이 있다. 쌓인 책이 책장을 넘어 방바닥까지 점령해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버릴 책을 고르니 양이 만만찮았다. 어찌하면 잘 버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기증하려 해도 월간지가 대부분이라 마땅치 않았다. 그때 할머니가 생각났다. 온종일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데 책을 드리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며칠 후, 마침 할머니를 길에서 만났다. 책을 가져가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반색했다. 가능한 시간과 전화번호를 받았다. 약속한 날짜가 되었을 때 미리 책을 정리해놓고 할머니를 기다렸다. 워낙 무거우니 끈으로 묶어서 함께 1층까지 운반하려고 나름 마음의 준비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오셨다. 그날이 할아버지를 처음 본 날이었다. 할머니 서사의 주인공인 할아버지를 그렇게 볼 줄은 몰랐다. 할머니 말씀만 들었을 때는 체격이 좋고 성격이 급하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일 거라고 상상했다.

할머니를 알게 된 지 십여 년이 넘는 동안 할머니는 한 달에 서너 번 매장에 들러 빵을 사 갔다. 그때마다 ‘우리 할아버지가 잡수실 거라서.’, ‘우리 할아버지가 맛있게 잡수시더라고.’ 하며 할아버지께 극존칭을 쓰곤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요즘 세상에 저토록 남편을 받드는 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할머니에겐 늘 할아버지가 먼저였다. 할머니는 카스텔라만을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폐지를 주워서 번 돈으로 당신이 드시려고 다른 빵을 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내놓을 때 할머니 손은 갈퀴보다 더 험했다. 햇볕에 탄 까만 얼굴과 빼곡한 굵은 주름은 할머니의 하루를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폐지를 줍느라 거칠어진 손으로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사가면서 행복해하던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얼마나 할아버지에게 억눌려 살았으면 밖에서까지 옆에 있는 것처럼 행동할까 싶어서였다.

언젠가 한 번 하루가 지나서 판매할 수 없는 샐러드를 드린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몹시 고마워하며 소중히 받아가셨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가 처음으로 카스텔라가 아닌 샐러드를 샀다. ‘할아버지가 아주 잘 드시더라니까.’ 이유는 그러했다. 카스텔라에 비하면 샐러드는 세배나 비싼 가격이었다. 온종일 폐지를 주워도 그 값에 미칠까 싶었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때 흡족해하시던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딱 한 번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할아버지, 그분이 나는 궁금했다. 할머니의 고생이 온통 할아버지의 탓인 것만 같아서였다. 집에서 넙죽넙죽 받아 드시지만 말고 같이 도와서 함께 일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잖았다.

그 할아버지를 뜻밖에 우리 집에서 처음 보게 된 것이었다. 내 상상은 단번에 깨졌다. 할아버지는 무척 왜소하고 작았다. 얼굴빛이 사납지도 권위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눈빛만은 형형했다. 예전 선비 같은 점잖은 인상이었다. 말씀도 없으셨다. 두 분은 수레와 자루를 준비해 오셨다. 할아버지 몸이 편찮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아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보다 허리가 꼿꼿했다.

두 분은 자루에 꼼꼼하게 책을 담았다.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책 담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챙겼다. 행여 무거운 걸 들까 봐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책 자루를 번쩍 들어 수레에 실었다.

책을 싣고 두 분이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걸 복도에서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가 수레를 끌고 할머니는 뒤에서 허적허적 따라갔다. 두 분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그 뒤로도 몇 번 할머니는 카스텔라를 사러 가게에 오셨고 여전히 할아버지가 좋아해서 그런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얼마 뒤 할머니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다음이었다. 할아버지가 폐지를 주우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수레를 할아버지가 끌며 새벽을 열었다. 체격이 작지만 빠른 걸음에 강단져 보였다.

할아버지를 볼 때면 내심 반가웠다. 할머니가 더 일하지 않아도 되나 싶어서였다. ‘이제는 좀 쉬려나 보구나. 할아버지가 마음을 잘 잡수셨네.’라고 혼자 생각했다. 할머니의 억척이 지나쳐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두 분 모두 삶이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다시 나온 것이다. 더욱 작아진 모습으로….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삶의 굴레를 굴리듯 할머니는 바윗덩이 같은 수레바퀴를 끌며 건너편 골목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수필미학.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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