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연(痛緣) / 최해숙

 

 

길을 가다 보면 소도 보고 중도 본다. 눈도 맞고 비도 맞는다. 밝은 대로를 걸을 때도 있고, 칠흑의 오솔길을 걸을 때도 있다. 일 년 열두 달, 삼백예순 날이 한결같을 수 없듯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만 기대할 수 없는 게 세상살이다. 생의 절반을 살면서 음으로 양으로 터득한 결론이다. 터득이 곧 득도라도 되는 양 흔들리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턱도 없는 자만이었다. 난데없이 덮어쓴 흙탕물 때문에 이리 마음이 출렁이는 것을….

십여 년 전, 우연한 인연으로 어느 문학단체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글 한 줄 못 쓰지만 출석만은 꼬박꼬박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매사 야물지 못한 내겐 그것도 대단한 결심이었다. 사람 사는 일이 그렇듯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처음 먹은 마음 변치 않기가 어렵다. 하물며 물러터진 내 마음이야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늘 누군가로부터 빼앗김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탓인지 연이라는 사슬에 함께 묶이길 좋아한다. 그 울타리 안에서 불안을 다독이며 평안을 얻는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혈연과 지연은 타고났으니 애써 얻지 않아도 되었고,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알량한 족적으로 학연 또한 맺고 있었다. 세인들이 말하는 삼연을 가졌으니 애써 발을 넓히고 연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한데 우연히 발을 들인 그곳이 나를 붙들었다. 피를 토하듯 아픔을 쏟아내는 글들이, 먹물 같은 어혈을 토해내고 눈물 글썽이는 그들이 나를 붙들었다. 백지나 다름없는 내 명함에 통연洞緣이라 돋을새김 하며 함께 뒹굴어보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나의 희로애락에 울고 웃어주는 그들에게 나 또한 같이 울고 웃어주었다. 서로의 무덤에 장미꽃을 놓을 때까지 함께 하기를 소망했다. 어느 한 쪽에 마음을 두면 다른 쪽을 돌아보지 않는 성미인지라 그간의 연들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모든 일정의 앞자리에 통연이 있었다.

사람의 좋은 일과 붉은 꽃의 아름다움은 열흘을 넘지 못한다고 했던가. 주로 권력의 무상함에 빗대는 말이지만 그와 무관한 나에게도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다. 스스로를 꽃이라 생각한 적 없으니 아름다움이야 본래 오고 감이 없었지만 좋은 일이 오래가지 않음은 세상 이치인 것 같다.

북풍처럼 매섭던 바람에 온기가 느껴지더니 겨울에서 겨울로 건너뛰려던 내 인생에도 봄이 찾아왔다. 언제나 먹구름이 끼었던 나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미약하나마 세상에 글 이름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성한 자식이 가정을 꾸렸고, 저 또한 부모가 되었다. 사람살이 한 평생이 늘 봄날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살맛이 났다. 찰나라도 봄맛을 보니 만년설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허락된 봄날은 거기까지였다.

몇 년 새 하나뿐인 남동생과 올케를 연이어 잃었다. 팔순 노모와 어린 조카들만 세상에 남겨졌다. 조카들은 노모가 지켜야 할 겨울이었고, 노모는 내가 지켜야 할 겨울이었다. 그들의 생에 또 다른 봄이 올 때까지 나의 봄은 중요하지 않았다. 겨울잠에 들어야 했다.

잠시 겨울잠에서 깨어나 보니 이름을 올린 모임에서 틈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실금이 가 있던 틈은 어느새 주먹이 들락거릴 정도가 되었다. 그간 쌓였던 부드러운 말들은 그 틈 사이로 자취를 감추고 먼지보다 가벼운 말들만 허공을 떠다녔다. 요란스럽지 않았을 뿐 틈이 벌어진 지는 꽤 되었고, 그 틈으로 바람이 들락거린 걸 아는 이는 모두 짐작하고 알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통연洞緣은 살아 움직였다.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다달이 산행을 하며 연의 울타리를 더욱 튼튼히 다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떠했는가. 오래 글을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시도 때도 없이 글쓰기를 포기해야 된다는 주문을 걸었고, 내게 드리워진 냉기를 떨치고 몸을 데우느라 늘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공식 행사에나 얼굴을 내미는 정도였다. 그런 내게는 어떤 정보도 첩보도 닿지 않았다.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너무 오래 동굴 속에 있었던 탓일까? 하여 나를 따뜻한 빛의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인가? 아직 내가 발붙이고 있던 울타리 안의 그들이 내게 너무도 큰 선물을 안겼다. 냉전시대에나 들었던 ′첩자′라는 이름을 내게 붙여 주었다.

통연洞緣은 글을 쓰는 이들의 동아리다. 이 동아리는 다들 한가락씩 하는 이들의 집단이기도 하다. 그들이 선택한 낱말이 첩자란다. 내가 어디에서 정보를 취해 누구에게 일러바치는 존재라는 말이다. 내가 첩자라면 그들은 저희들끼리 숨어서 내가 모르는 무슨 첩보 정치라도 했다는 말인가. 어느 첩보영화를 보더라도 몸통 없는 첩자는 없는 법, 내가 첩자라면 몸통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나는 매사에 게으르고 싫증을 잘 낸다. 어디를 가든 늘 도망 보따리를 뒤에 감추고 다닌다. 그런 내가 십여 년을 버텼던 건 가식 없던 진정성의 눈물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며, 그 눈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만 주저앉으려는 나를 여태 끌고 온 것도 그 눈물이었다. 하여 어딜 가도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애를 썼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노력했다. 한데 동굴 속에 묻혀있던 나에게 첩자라니. 선물치고는 너무 아픈 선물이다.

선물이라고 다 받는 이의 마음에 차리라는 법은 없다. 선물을 준다고 무조건 받아야 된다는 법도 없다. 하여 나는 그 선물을 받지 않겠다. 내가 그 선물을 받는다면 오랜 시간 오직 수필을 위해 살았고, 그들이 지금 세상에 나가 어깨에 힘을 주고 방귀 깨나 뀌면서 한가락 하도록 글눈을 밝혀준 분에게 너무도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에게 보답은 해야 인지상정이다. 태양처럼 뜨겁진 않아도 언제나 그들을 향해 열려있었던 내 마음을 거두는 일이다. 늘 가슴 한 귀퉁이에 남을 그 눈물을 생각하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그 눈물을 사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십 년 세상을 살아본 이들은 안다. 삶이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선택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상황과 형편에 따라 부득이한 선택을 하며 사는 게 세상살이라는 것을. 한데 나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생각나는 대로 말들을 내뱉는다면 서로에게 아픈 통연痛緣을 짓는 일 외에 무엇이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