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숲을 거닐며 / 한경선

 

현기증과 함께 식은땀이 흐른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누군가에게 몹시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뒤늦게 내 무지와 무식을 발견할 때마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몸을 움직인다. 차를 한 잔 마셔야겠다 싶어 천천히 찻물을 준비한다. 자책하며 약을 먹듯 천천히 차를 넘긴다.

이름 석 자와 아라비아 숫자 10까지 겨우 익히고 입학한 초등학교. 어느 날 선생님은 칠판에 한글 닿소리를 쓰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아래 닿소리 이름을 써보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하나씩 손을 들고 나가서 ‘기역, 니은’을 쓰고 어렵게 ‘디귿, 티읕’도 썼다. 문제는 ‘ㅎ’이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칠판 앞으로 나가 이름을 썼지만 선생님은 모두 정답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잠깐 교실 안에 침묵이 흐르고 나는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히읗’이라고 썼다. 선생님은 맞게 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글쎄 왜 그렇게 썼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 기억 한 조각은 남아있다.

국어시간이 좋았다. 새 책을 받으면 국어책부터 열었다. 시를 읽고 수필을 읽고 소설을 읽었다. 국어시험은 따로 공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점수가 나왔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무슨 책이든 눈에 띄면 읽었다. 글짓기 대회도 자주 나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에 틀리게 쓴 것이 톡톡 눈에 띄었다. 중학교 때 처음 남학생의 편지를 받았는데 맞춤법이 엉망이었다. 난 끝까지 읽지도 않고 편지를 아궁이에 넣었다. 그렇게 맞춤법을 모르면 공부도 아주 못 할 것이라고 얕잡아봤기 때문이다.

어찌 알았으랴. 내가 뒤늦게 다른 사람의 글에서 뉘와 티를 가려내는 일을 하게 될 줄을. 일을 하면서 좌절은 수시로 왔다. 그동안의 오만은 보잘것없이 깨지고 무너졌다. 내가 잡아내던 티는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고 겨우 아는 만큼 보였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어휘도 쓰고 제각각의 방언도 썼다. 틀린 글자를 잡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원고를 읽으면 문맥을 놓쳤다. 문장이 좋아서 정신없이 읽다 보면 오탈자를 놓쳤다.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매끄러워졌지만 같은 글을 세 번, 네 번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긴장하지 않고 읽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읽기이다.

어느 문장은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아서 빗이 내려가지 않는다. 가시넝쿨 얽힌 길을 걷는 듯해서 낫을 휘두르다가 숨을 고른다. 일관성 없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고 허둥댄다. 그러다가 도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어 주저앉는다.

글 잘 쓰는 사람만 글을 쓰고 책을 내라는 법은 없다. 좋은 문장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글에 아픔을 털어놓고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엿본다. 그것도 귀한 일이라서 거친 글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우리 어머니들도 그랬다.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더 될 것이다.”라고. 그분들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내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었고, 어떤 사람들은 꺼내어 놓은 것이다. 거기에 내 알량한 글줄을 보태서 좀 다듬어 줄 뿐인데, 그때마다 완벽하게 해냈다고 할 수 없으니 낭떠러지로 떨어지곤 하는 것이다. 책이 나오면 두려워서 선뜻 열어보지도 못한다.

오호 애재라. 이왕 글월 가까이에서 살려면 명문을 짓는 작가로 살 것이지 다른 사람의 글에 뉘를 고르며 고심하는 자리에 서서 애를 태우다니.

늘 잡초 우거진 밭을 매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오솔길에서 들꽃을 만난다. 시원한 숲 속에서 꾀꼬리 소리도 듣는다. 훤하게 뚫린 길을 거침없이 달릴 때도 있다. 작가와 손을 잡고 걸으며 유쾌하게 웃을 때도 있고, 그의 아픔을 들으며 눈물이 고여서 창밖을 바라볼 때도 있다. 좋은 문장이 기억에 남으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신이 나서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목과 어깨가 뻐근하도록 남의 글을 읽는 어려움과 두려움은 휘발되고 나도 모르게 마음을 가다듬어 원고 속으로 들어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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