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안테나 / 김상영 

소싯적 우리 집에 금성 라디오가 있었다. 굵직한 건전지 여러 알로 작동하였는데 아껴 쓸 양이면 녹물이 번져 알통이 지저분하였다. 우리나라 전자 기술이 일천할 때였다. 박정희 시대의 혁명 뉴스, 재치문답, 법창야화 등에 귀를 세웠으며 하루라도 연속극을 건너뛰면 어찌 돼가나 궁금하여 좀이 쑤시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한번은 뒷집의 앙증맞은 일제 라디오와 자웅을 겨룬 일이 있었다. 두 라디오를 같은 방송 주파수에 맞춘 다음 가까이 대서 소리가 죽는 놈이 지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성능 좋은 일제에 소리를 빼앗긴 우리 라디오는 멍청해져 버렸다. 어른들은 시쳇말로 ‘석’이 많은 일제가 전파를 강하게 당긴 탓이라며 체념한 성싶었다. 모르긴 했지만 나도 일제의 트랜지스터가 옹골찬 데다 그 수조차 많은 게 아닌가 어림짐작하였다.

뒷집 상구 형이 우리 똥개에게 빌빌 기던 저희 삽살개 분풀이를 라디오로 벌충한 셈이었다. 그뿐이랴, 일제에 쉽사리 잡힌 방송을 우리 라디오는 감지하지 못하였다. 덩치만 컸지 축구였다.

  상구 형네처럼 일본 사는 친척이 없어 일제를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뭔가를 해야 했다. 다람쥐처럼 감나무를 타고 올라 ‘상상봉’에 안테나를 달았다. 열십자 막대기에 전선을 거미줄처럼 뱅뱅 둘러친 꺼벙한 안테나였다. 디딜방아와 장독대 사이 감나무가 라디오와 가까운 데다 기와지붕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위치여서 안테나를 높게 세워 묶기에 좋았다. 헌 자전거 발전기 속 코일이 실타래처럼 길어 감나무와 라디오 사이를 꺾고 걸어 잇기에 너끈하였다.

  감나무를 타고 내린 코일이 꽁보리밥 소쿠리 매단 서까래 못대가리를 감고 돌았다. 부엌 들창 그 시커먼 구멍을 통과하여 대청마루 라디오 선반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전파들이 그 엉성한 십자가 안테나에 부나비처럼 걸려들어 스피커에서 울었다. 자글대던 방송이 왕왕거리니 식구들이 “이야!” 했다. 가보 1호 라디오를 고장 낼까 봐 내 하는 짓을 곁눈질하던 아버지도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다.

  기술이 펄쩍 뛰는 요즘엔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성능 또한 우수하다. 하지만, 이즘 우리 집 안테나는 자식들을 향한 노파심 회로 전용 이동 무선국으로 바뀌었다. 그 안테나의 눈과 귀는 방향 설정이 따로 없는 반 고정식이다. 맑은 날이나 궂은 날도 인천 소래포구로 부산으로 주파수가 맞춰진다. 부지불식간에 자식들 사는 세상을 포착하여 읽을 수 있지만, 사흘이 멀다 날아드는 택배에 적잖이 위안이 되고 있다.

오늘도 인천 소래포구 사위에게서 온 전파는 석류 상자를 싣고 왔다. 요전 앞서 받은 붕장어회와 삼겹살은 이웃 주객들과 안줏감으로 삼고도 남았다. 된장찌개용 미더덕이 들었을 땐 아내 입이 떡 벌어진다. 어찌 장모 입맛을 때때마다 요렇게 잘 맞추냐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부엌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사위인데다 마음 씀씀이까지 섬세하니 천생 여자라 추켜세운다. “뭐가 필요하십니까? 어무이.” 하며 말끝마다 ‘어무이 어무이’ 해 싸니 예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깥일을 즐기는 딸내미와 바꿔 된 듯싶은데, 사돈이 아시면 덜떨어진 녀석이라며 핀잔할 일이다.

신식 컴퓨터도 사위한테 택배로 선물 받았다. 모니터는 웬만한 TV 뺨치게 크고 선명하다. 넷플릭스를 소개해 주고 시청료도 부담하였다. 덕분에, 쏟아지는 영화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요즘이다. 쓰던 컴퓨터는 사위가 거둬갔다. 유튜브에 탑재할 동영상 구동용으로 활용한다나 뭐라나. 컴퓨터 예닐곱 대가 밤낮없이 돌고 있다는데 설명을 들어도 가늠하기 어렵다. 편곡을 주로 하는 모양이나 그런 시답잖은 일로도 딸내미를 먹여 살린다니 신통방통하다. 생빚 내서 택배 선물을 보내올 리 없고 보면 살만하다는 신호가 잡힌다.

부산 맏딸이 한동안 잠잠해서 안테나를 곧추세웠더니, 아뿔싸! 코로나 회복 중이라 한다. 너나없이 걸리다시피 하는 데다 엄마 아빠 걱정할까 봐 입을 닫았다니 누굴 닮아 저리 무던한가 싶다. 걔도 코로나 이전엔 사위 못잖게 바리바리 보냈다. 화장품, 원두커피 분쇄기, 반찬 덮개, 족욕기, 제 어미 신발, 마른오징어 등등 다양하다. 입 떼기가 무섭게 사 보내서 겁이 날 지경이다. 내가 뭣을 잘 먹나 살폈다가 때때마다 상에 올리는 아내와 진배없다. 형편이 넉넉지 않음에도 맏딸 노릇을 잘하려고 씀씀이가 헤픈 딸이라 짠하다. 코로나 끝날 때까지라도 아내 입은 마스크로 봉해지겠지.

공영방송 아침마당을 이금희 아나운서가 주름잡을 때 어느 시청자가 한 말이 의미 깊다.

“이금희 씨 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면 세상이 평온히 돌아가는구나 싶어요.”

안테나에 전파가 잡히지 않거나 늘 오던 택배 주기週期가 늘어지거나 멈추면 은근히 걱정된다. 전화상으로야 “염려 붙들어 매소.” 입에 발린 소리를 하기 마련이나 택배는 정직하다. 그럭저럭 돈벌이가 되는구나 싶고, 무탈하단 표시 같은 선물이라서다.

  소통에 있어 나는 ‘젬병’이다. 살림 난 아들과 주기적으로 소주 일여덟 병을 까며 속을 헌다는 대구 동서가 부럽다. 며느리와 맥주를 박스째 들이켜며 새벽을 맞는다는 지인도 부럽다. 나는 궁둥이가 진득하지 못하여 그리 진하게 수다스럽지 못하다. 기껏해야 아내의 전화를 엿듣다가 한 마디씩 거들거나 ‘카더라’ 방송을 전해 들을 뿐이다. 수박 겉핥듯 갑갑한 감이 없지 않은 노릇이다. 그 미흡한 부문을 보완해 주는 매체가 택배다. 횟감이나 고기가 올 때 술 한잔 걸치는 즐거움이 있으니 집안에 활기가 넘친다.

이렇듯 우리 집 안테나는 부산과 인천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감나무 꼭대기에서 하늘 향하여 목 빼던 기억처럼 내 가슴에 있다. 안테나 높이 세운 내게 말없이 격려해 주시던 아버지의 미소처럼 말이다. 택배로 이어진 전파는 서로를 지향하며 시시때때로 오갈 것이다. 요단강 건널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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