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 박종희

 

나막신인가, 아니 나뭇잎 배인가, 움푹하게 들어간 타원형의 투박한 접시에 자꾸 눈이 갔다. 앞에서 보면 나막신이고, 옆에서 보면 어릴 때 도랑에 띄우고 놀던 나뭇잎 배의 모습이다.

같이 근무하던 분이 명예퇴직하고 도자기학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어느새 공방을 차렸다는 연락이 왔다. 30여 년간 한 직장에만 근무하던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모두 걱정스러워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공방까지 차렸다 하니 직원들도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다.

30여 평 되는 아담한 공방에는 자신이 만든 도자기도 있었지만, 이름 있는 도예가가 만든 생활자기가 많았다. 작은 접시부터 장식용 항아리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다. 유명한 도예가의 이름이 붙어 있는 고려청자를 닮은 도자기 하나가 수백만 원이 넘는 것도 있었다.

첫 방문이고 초대를 받았으니 무엇인가 팔아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방을 들여다보다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나막신을 닮은 그릇이다. 첫눈에 들더니 공방에 있는 내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막신처럼 도톰한 굽 모양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반찬 접시나 볶음밥 같은 것을 담는 밥그릇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주위를 돌며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심중을 알아차렸는지, 공방에 나와 있던 지인의 부인은 '그 접시는 여기 들어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씩은 만져보고 가격을 물어보는 인기상품'이라고 했다. 같은 접시를 두 개 사고, 마음에 드는 다른 그릇을 주섬주섬 고르다 보니 꽤 많은 돈이 나갔다.

안면 때문에 돈을 쓰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안절부절못하는 지인을 뒤로하고 공방을 나오며,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졌다. 이 그릇을 만든 도예가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물레를 돌렸을까. 내 생각처럼 나막신이나 나뭇잎 배의 모습을 생각했을까?

도자기는 도예가가 돌리는 물레의 손길에 따라 모양도 달라진다. 형태가 만들어지면 손으로 매만져 모양을 바로잡고, 밑그림을 그려 넣어 말린 다음,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는다. 불가마 속에서 완성되어 나온 도자기가 도공의 눈에 들지 않으면 바로 깨뜨려 버린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아까운 것을 왜 깨뜨리느냐고 하지만, 도공의 눈에는 자기가 구워낸 옹기에서 생명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가장 건강한 시기에 아이를 잉태하는 산모처럼, 도공이 가마에 불을 때는 날은 새벽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신성한 마음으로 불을 지핀다고 한다. 그만큼 도공에게는 도자기 굽는 일이 자식을 생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하기 때문일 게다.

사 온 접시에 잘 익은 김장김치를 담아 저녁상에 올려놓으니 훨씬 제 모습이 살아났다. 마치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손에 흙을 묻힌 도공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도공이 흙으로 귀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처럼 친정어머니도 나를 그렇게 빚었을 것이다. 아주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생식세포를 받아들여 안전하게 착상시키고, 열 달 동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음식만 먹으며 태어날 아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기를 낳으려고 아파도 약을 먹지 않고 견디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마에 불을 때는 도공의 마음이리라.

어머니가 나를 귀하게 낳았듯이, 나 역시 딸애를 임신하고 나서 세상에서 혼자 아이를 가진 것처럼 유별나게 태교를 했었다. 퇴근해 돌아오는 남편은 기타를 치며 좋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식사할 때도 태아한테 좋지 않은 음식은 가려서 먹었다. 유별나게 긴 입덧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아이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했던 때가 눈에 선한데. 그렇게 태어난 딸애가 벌써 고3이다.

도공의 이름값을 하는 귀한 도자기는 도공의 혼이 들어간 작품이다. 평생 한 개의 소중한 작품을 만들려고 몇 번이나 옹기를 깨뜨려버리는 도공처럼, 나도 딸애가 성장통을 겪으며 흔들릴 때마다 모진 소리로 딸애의 가슴에 이는 바람을 잠재웠다. 쉬이 깨지지 않고, 넘치지 않는 그릇으로 키우려고 20년 동안 가슴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좋은 그릇을 빚는 일도 중요하지만, 관리를 잘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값비싼 도자기를 애장품으로 모셔두고 늘 애지중지하듯이, 자식도 큰 그릇이 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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