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도 살리는 셰익스피어 / 김애양

 

 

오늘처럼 햇살이 노랗게 쏟아지는 아침이면 봄을 실감한다. 새로운 시작이 한껏 느껴진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흔적 없이 녹아내리고 조팝나무 잎새가 소리 없이 움트는 휴일을 맞아 모처럼 가까운 산을 찾았다. 검단산 정상에서 팔당댐을 내려 보다가 문득 아버지의 추억에 사로잡혔다.

내가 인턴 시절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25년도 더 지난 일이리라. 정년퇴임을 맞은 그해 아버지는 날마다 관악산을 오르셨다. 그러나 변변한 등산화 하나 없이 언제나 밑창이 맨질맨질한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신발이 튼튼한 때가 아니라서 그 운동화조차도 바닥에 쉬이 구멍이 나곤 했다. 그런 아버지의 신발을 눈여겨보던 나는 월급을 타자마자 동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아버지 발의 크기를 정확히 모르기에 무조건 큰 걸로 사들고 왔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커 보이는 아버지는 의당 발도 클 것이라 생각했다. 딸네미의 선물을 받아든 아버지께선 등산화란 원래 크게 신는 거라며 좋다시길래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날도 오늘처럼 햇살이 눈부신 3월이었다. 데이트 약속도 없고 당직도 아닌 토요일 오후 나는 퇴근길에 관악산으로 직행했다. 아마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겠지만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삶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언제나처럼 연주암에 이르러 숨을 고르고 있는데 낯익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우리는 따로따로 등산을 왔건만 정상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었다. 그 예정에 없던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처럼 드라마틱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만 지어보일 뿐 사람들 앞에서 결코 나처럼 호들갑스럽게 반가운 내색은 않으셨다. 우리는 함께 하산 길에 올랐는데 나는 이내 콧날이 시큰해지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사드린 터무니없이 큰 등산화 때문에 양말을 다섯 켤레나 겹쳐 신고도 남아도는 공간에 영 어색한 걸음걸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존경하는 아버지의 발 크기도 모른 채 아무 등산화나 사다드린 무성의한 딸자식이란 자책감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모른다. 숫자에 약한 나였지만 265mm란 아버지의 발 치수를 그날 기억하고 또 기억해 두었다.

올해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7년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할 만한 일들은 아직도 내 곁에 하염없이 맴돌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받은 책도 그랬다. 동국대학교 영문과 김한 교수님의 저서인《셰익스피어의 인간과 세상 이야기》의 서문을 펼치니 아버지의 이름이 대번에 눈길을 끌었다. 우리말로 셰익스피어 전집이 완역된 1964년은 세계적으로 7번째 달성된 번역사였단 것과 그것은 순전히 고(故) 김재남 교수의 열정의 결과란 치하가 적혀 있었다. 은사의 이름을 빛내는 이 대목을 발견하고는 핑 도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아버지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책 속에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불후의 명대사와 함께 몇몇 작품들이 해석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4대 비극은 누구나 잘 안다하지만 상대적으로 숨겨진 보물처럼 생소한 제목들도 많다. 그 일례로《페리클레즈》의 소개를 보고나서 원작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찾아 읽게 되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유난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리클레즈는 타이어의 군주이다. 그는 바다 가운데서 죽은 아내를 수장(水漿)시켜야 했다. 풍랑 때문에 조산을 한 왕비가 죽은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해박한 의학 지식을 가진 한 귀족이 가사 상태에 빠져 있던 왕비를 건져 올려 치료를 시작한다. 몸을 덥혀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약초를 코에 대는 시술로서 생명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신묘한 의술로 죽은 이를 살리는 이 구절은 의사인 내게 매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산모들과 위험의 순간을 함께 했던가? 출산 후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출혈로 혈압이 쭉쭉 내려갈 때 분만실의 수은등보다 더 파리해져가는 산모의 손을 잡고 절대자에게 기도를 올리던 일이 얼마나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던가?

또 난산 끝에 태어난 아기가 첫울음을 울지 않는 아찔한 순간엔 분초를 다투어 가며 얼마나 다급하게 응급소생술을 행하곤 했던가?

내 두 눈앞에서 이승을 버리고 저승으로 건너간 몇몇 생명들의 기억도 생생하다. 장성 철길에서 무단횡단을 하다 두 다리를 잃은 후 서서히 숨이 꺼져가던 중년부인 앞에서 응급실 인턴이었던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의 절망감이란….

의사란 생명의 한쪽 끈을 잡고 있기에 어느 경우에나 생로병사에 초연할 수가 없다. 그런데《페리클레즈》에 나오는 의술 때문에 나는 홀린 듯이 이야기 속에 빠져 들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읽던 중에 때마침 인터넷 뉴스에서 신기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판정을 받은 사람이 부검실에서 눈을 번쩍 떴다는 내용이었다. 그와 같은 일은 몇 년 전에 베네수엘라에서도 발생했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죽고 사는 일이란 인간의 의지 그 이상이므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셰익스피어라면, 천하의 셰익스피어라면, 죽은 이도 능히 살려낼 수 있으리라.

그것은 비단 육신이 죽은 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문학을 빼앗기고 예술혼이 말살된다면 우리는 과연 살아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문학이 없다면 그걸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가 인류에게 진정한 삶과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좋은 문학작품이 있다한들 읽혀지지 않고 그 맛을 음미할 수 없다면 도무지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에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유라시아 극단의 야심 찬 프로젝트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아홉 번째 작품인《존 왕》의 공연을 축하하며 큰 기대와 함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 봄날 아버지의 은은한 미소가 유난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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