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 최호택

 

 

너무 멀리 왔나?

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기억을 되짚어 본다. 지나온 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갖은 상념만 머릿속에 가득 차오른다.

애당초 목표를 정하고 떠난 길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목표에 다다른다는 것은 어렵기도 했지만 꼭 그곳까지 가야 할 까닭도 없다. 편리한 해석이지만, 나에게 목표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곧 목표 지점이다.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단 한 걸음도 함께 걷지 못했다. 가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요, 가는 방법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함부로 쫓을 일도 아니고, 동행을 강요할 수도 없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외로움이 더해간다. 한동안 걷다가 할아버지 같은 노송 밑에서 쉬기도 했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며 땀을 식혀준다. 이름 모를 새들이 나무 저 나무를 오가며 노래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양지바른 곳에 꽃이 피어 있다.

저 노란 꽃의 이름이 ‘나도양지꽃’이라고 한다. 이른 봄, 양지 녘에 족두리 쓴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머리를 들고 앉아있다. 그런가 하면 제 키의 팔 부쯤에 보리 색 꽃을 안은 듯 달아놓고 수줍어하는 저 꽃은 무슨 꽃일까. 산중에서도 저렇게 수줍어할 까닭이 있나. 겸손도 저 꽃처럼 80% 정도면 적당하다. 넘으면 자찬(自讚)이요, 모라라도 예(禮)가 아니다. 산목련도 수수하기 그지없는 상아색 꽃을 피워 올렸다. 그들은 다투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희망을 품지도 않는다.

희망을 품지 않은 자에게 절망은 없다. 저들은 계절을 기다리지 않는다. 제때에 올 것을 믿으므로 그들의 이름을 몰랐을 때도 안 다음에도 그들의 몸짓은 한결같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내가 가는 길에 나 말고는 무엇 하나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자연이라 부른 것인가. 쓰러진 고목조차도 쓰러져야 할 자리에 쓰러졌다. 비바람에 굴러 내린 맞춤한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나처럼 어디론가 자꾸만 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간혹 산나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무숲을 날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꽃을 찾아 농을 걸고는 다른 꽃으로 떠난다. 나비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꽃도 없다. 단지 살짝 부는 바람에 향기를 실어 보냈을 뿐이었다. 우리는 왜 안달을 하며 남들 앞을 오가거나 서성거리는가. 갑자기 주위가 낯설어지고 자신이 참담해짐을 느꼈다.

나는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았다. 아니지, 어쩌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도 모른다. 설사 길을 잘못 들었다 하더라도 되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요, 되돌아간다 한들 더 나은 길을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기왕에 지나온 길이야 운명이라 한들 아니라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싱거운 것이 인생이다. 지나고 나니 그것이 뭐 그리 화를 낼 일이었으며 심각해할 일이었던가. 실망스럽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참지 못하고 반응하던(그때는 그것을 ‘정의’라고 했을 것이다) 일이 부끄럽다.

나는 나의 남루를 비겁을, 혹은 몽매를 벗어던지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잘못 산 것에 대한 죗값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실망했다. 실망하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끝내 절망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등으로부터 무거움이 느껴진다. 결국은 다 버릴 짐인데 진즉 내려놓지 못하고 굳이 지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이람. 그것은 길을 떠난 후 언제부턴가 줄곧 해온 생각이지만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모두 꺼냈다가는 주섬주섬 다시 주워 담았다. 편견에 사로잡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더러는 남의 눈치를 보고는 했다.

이제 얼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잘 우거진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고 난다. 제각각의 크기와 색깔로 피어있는 꽃이 아름답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제각각 사는 법을 터득한 까닭이리라.

그래서 자연(自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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