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 / 엄현옥

 

 

 

낡은 수문이 서 있는 좁은 길을 지났다. 아까시 나무는 며칠 만에 그늘을 키웠다. 길 양편으로 갯벌이 과묵하게 앉아 있었다. 초록빛으로 변한 갯벌은 바람과 갈대의 소요에 미동도 없었다. 평소 보았던 걸쭉한 암회색 갯벌이 별안간 초록색이 되어버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 연유가 있으리라.

갯벌이 초록색으로 변한 이유가 궁금했으나, 네이버의 검색창을 열지 않았다. 지금껏 적나라한 근거와 명징한 논리에 무수히 설득 당해온 터, 신비로운 영역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 하나쯤 있어도 좋았다.

갯벌은 바다를 따라 나가지 않았다. 바다를 보내고 맞으며 제자리를 지켰다. 바다는 고작 한나절 후면 갯벌에 덥석 안겼으므로 물썬 때에도 갯벌은 마르지 않았다. 갯벌의 흡인력에 난바다로 나아가지 못했다.

갈대 무성한 습지에는 탐조대가 즐비했다. 새를 촬영할 때 내 편에서만 볼 수 있는 가림막이었다. 새에게는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이나 초상권이 없는지 출사 나온 이들은 저마다의 프레임에 새들을 담았다. 인공구조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염전이었던 갈대숲을 걸었다.

전시용으로 남은 염전의 칸막이는 지금도 견고했다. 칸칸이 나누어진 그곳에는 염기(鹽氣)로 무거워진 바닷물이 시시때때로 불어대던 바람에 물기를 말렸다. 마지막 칸에 이르러서야 흰 결정(結晶)으로 빛났다. 바람과 햇볕에 졸여진 함수에 소금꽃이 맺히면 기다림으로 다져진 염부들에게 소금더미가 봉분처럼 쌓였다. 짭짤한 보상이었다. 여태까지 우리가 지내온 시간들도 이미 정해진 칸에서 다른 칸으로 옮겨 다니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원한다 하여 시간이 구획 지어 놓은 칸을 이탈할 수 없었다.

소금창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성한 갈대는 계절이 변한다고 서둘러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지난겨울에 연한 베이지색으로 사위어가던 마른 줄기는 매년 시들고 다시 자라나기를 반복하며 강인해졌다. 누구도 해를 보낸 갈대를 베어내지 않았다. 누런 갈대는 갓 올라온 초록잎을 감싸며 바람을 견디는 방법을 온몸으로 알려주었다. 풋풋하게 올라오는 새 잎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냈다.

소금창고 앞에 섰다. 창고 주변은 건들마가 서성이던 들판이었다. 바람막이 없이 삭풍과 시간의 침식을 견딘 남루한 창고는 바람과 햇빛에 나날이 여위어 몸을 가누기 힘들어 보였다. 시간의 만장(悗章)인 듯 녹슨 함석지붕이 바람에 파닥거렸다. 창고 부근으로는 갈대가 없는 단단한 바닥이 드러났다. 마른 갯벌에 스민 소금버캐는 함초와 칠면초를 간신히 품었다.

소금창고에는 눈부시게 빛나던 소금이 산을 이루었다. 짠물의 결정체인 천일염이 귀하던 시절, 소금의 종착역이던 창고는 한때 분주한 시절을 보냈다. 염부(鹽夫)의 땀으로 하얀 언덕을 이룬 천일염의 물기를 날리기에 하루해가 짧았다. 견학 온 학생들은 줄지어 들어와 전시용 소금을 만져보고 맛보았다. 녀석들은 빈손으로 보내기가 아쉬워 한 봉지의 소금을 선물로 안겨 보냈다. 이제 그들의 발자취도 사라졌다.

적막감이 감도는 낡은 창고는 을씨년스러웠다. 쇠퇴해진 소금창고는 천일염의 박물관이었다. ‘붕괴위험‧출입금지’의 붉은 고딕체가 선명한 표지판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소금창고는 시간의 지성소(至聖所)다. 염부들의 염원이 담긴 창고 주변에는 고무래질로 저문 해를 맞았을 그들의 땀 냄새가 짠 바람으로 배회했다. 그들의 삶이 염장(鹽藏)된 창고를 오래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진화하지 못한 초식공룡처럼 뼈대 앙상한 창고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시간의 풍화와 침식을 견디며 간신히 지탱해온 의지가 흔들릴 것이다. 대규모 택지개발 등으로 갯벌이 매립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금이라도 그대로 두는 것이다.

빈 창고가 위태롭다. 바람을 버티기 위해 경사도를 유지했던 나무 벽면도 뼈대만 남았다. 삐딱하게 서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간수를 박제하느라 기울였던 안간힘을 멈추어도 좋을 때였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창고는 소금 대신 추억으로 가득 찼다. 쌓아둔 소금을 비워낸 자리로 바람이 넘나들었다. 나른한 햇빛도 한나절은 창고를 내다보며 안부를 살폈다. 어느새 세를 불린 해당화도 빈 창고를 기웃거리다가 창고 안으로 가지를 뻗었다. 흐드러진 이팝나무도 눈치 없기는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와 거실의 중문을 밀었다. 남편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한 손에 리모컨을 든 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그의 모습이 소금창고와 오버랩 되었다.

그는 38년 동안 쉬지 않고 밟아온 고무래질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길어 올린 바닷물이 소금으로 오기까지 일손을 멈추지 않았던 열정의 시간은 비로소 속도를 멈추었다. 영예로운 퇴직이었으나 정작 자신은 기꺼워하지 않은 눈치였다. 소금창고는 창고의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일까.

그 때문인지 자신이 피워낸 소금꽃을 되돌아볼 여유는 아직 갖지 못한 듯했다. 이제는 켜켜이 쌓았던 염기를 거두어내고 지난 시간의 여운에 잠길 때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람과 햇빛을 즐겨도 좋으리라.

소파에 앉은 남편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내 조심스레 티브이를 껐다. 그가 눈을 비비며 창밖을 바라본다. 창문 가득한 앞동의 콘크리트 숲을 염정에 번지는 노을인 양 바라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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