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없는 그림 / 이정림

얼룩동사리는 매우 부성애(父性愛)가 강한 민물고기다. 흔히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놈보다 암놈이 새끼에 대한 사랑이 깊은 법인데, 이 물고기는 의외로 그 반대다.

얼룩동사리는 수놈이 먼저 집을 짓고 암놈을 기다린다. 집이라야 수초(水草)로 엉성하게 고치처럼 얽은 것인데, 그곳은 신혼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암놈의 알을 받기 위한 둥지인 셈이다.

집을 다 지으면, 부지런히 지나가는 암놈들을 유혹한다. 물고기들도 제 눈에 들지 않으면 응할 생각이 없는지 어떤 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힁허케 가 버린다. 또 어떤 놈은 마지못해 응하는 아가씨처럼 도도한 몸짓으로 집을 한바퀴 둘러본다. 장만한 아파트가 몇 평이나 되나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아도 될 만큼 안전한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 안전도 검사에서 불합격을 놓은 암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고, 다행히 집이 마음에 든 놈은 거기에다 산란(産卵)을 한다. 그러고 나서는 지체 없이 떠나 버린다. 어미라고 해서 모두 모성애가 강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수놈은 떠나 버린 암놈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다. 오직 종종 보존에만 관심이 있어서 새끼가 부화될 때까지 지성으로 돌본다. 지느러미를 흔들어 산소를 공급해 주기도 하고, 외적이 나타나면 용감하게 싸워 물리치기도 한다. 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모습은 정말 아버지같이 믿음직스럽고 감동적이다.

수놈은 스무 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알이 부화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그 숱한 알에서 새끼들이 터져 나오고, 하나 둘 알둥지를 떠나고 나면, 마침내 기진하여 숨을 거둔다.

텅 빈 알둥지 앞에서 눈을 껌벅이며 죽어가는 얼룩동사리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다가, 그만 가슴이 뭉클해 왔다. 자식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다가 생을 마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거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 땅의 아버지들은 작고 고독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 옛날, 한 집안을 떵떵 울리던 위엄은 사라지고, 가정 한 귀퉁이에서 조그맣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들이 요즘 바깥에서 배회하고 있다. 아버지의 위엄은 땅에 떨어졌어도 여전히 생계의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 했던 고달픈 아버지들이 회사에서 무더기로 감원을 당한 것이다.

아버지들은 그러고 싶어도 감히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걱정스러워하는 아내의 눈길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고,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릴 것 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아니면 지하도 맨바닥에서 신문지 한 장 깔고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제까지 달려온 숨 가쁜 세월,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였던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였다면, 그들은 아마 일찌감치 그 고된 삶의 짐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한 여자를 만나 아이 낳고 기르면서, 그들을 위해 사는 것이 평범한 사람이 가는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를 가기 위해 자신은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렸다. 하고 싶은 일도, 뱉고 싶은 말도, 모두 버리고 참았다. 밥값을 내지 않으려고 제일 늦게 구두끈을 매는 좀생원이 되었어도, 그런 비굴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상사(上司)의 모욕적인 말도 저녁때 한잔 술로 풀어내면 귀는 다시 깨끗해졌다. 내 가정만 지킬 수 있다면, 내 아이들만 잘 기를 수 있다면 아비의 자존심 따위가 무슨 대수랴 싶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아버지들이 의욕을 상실했다. 날로 야위어 가는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 육체를 지탱케 해주는 것은 의욕이요 희망인데, 그것이 없는 사람에게 찾아드는 것은 무기력일 뿐이다.

무기력은 정신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 이젠 더 이상 체면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무료 배급소에서 밥을 타 먹는 두 손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생존만이 절체절명의 과제일 뿐이다.

요즘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태양은 아버지를 상징하는데, 그려도 귀퉁이에 조그맣게 그린다고들 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도화지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많이 그렸었다. 그때 아버지들은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다. 아이들이 다시 도화지에 커다랗게 태양을 그릴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지금 서울의 아스팔트 위에서는 얼룩동사리들이 숨져 가고 있다. 맨바닥에 누워 신문지로 얼굴을 가리고 잠들어 있는 그 모습에서, 나는 이 시대의 불운한 태양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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