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밥상 / 이종화

 

 

점심때다. 식당엔 금세 긴 줄이 생겼다. 밥을 타는 사람들. 막내가 용케 자리를 잡고 멀리서 손을 흔들면 허겁지겁 그 자리로 달려들 갔다. 무사히 자리를 잡고. 마스크를 벗고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다. 멀찍이 주인의 밥상이 보인다.

회사 식당엔 아주 특별한 테이블이 하나 있다. 밥을 먹기 위해 구태여 줄을 설 필요가 없는 주인의 밥상. 끼니때마다 어김없이 정갈한 정찬이 차려지고, 기막힌 맛의 디저트는 이 테이블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주인과의 겸상을 간절히 꿈꾸는 사람들은 많지만, 주인 밥상에 놓인 의자는 고작 몇 개뿐.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그 몇 개뿐이었다.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견문을 넓히고 몸집도 키웠다. 기성세대 눈에 비친 젊음은 어딘가 모자라 보이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월등했다. 이들이 흘린 땀방울의 양도 이전 세대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별로 없다는 것.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빨라야 살아남는 시대. 자리가 생기면 잽싸게 채야만 했다. 날쌘 고양이 같아야 주인의 밥상에 올라탈 수 있었다. 헬조선이란 말이 한때 유행어처럼 번지고 모두 공정의 가치를 부르짖는 건, 요즈음 사람들이 유난히 도덕적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는 현실. 고작 그 몇 자리뿐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인의 밥상에 관심이 많다. 먹을 것도 많지만 들을 것도 참 많기 때문이다. 설령, 그 밥상에 합석하지 못한다 해도 누가 겸상하는지 더듬이를 세워 빼곡히 꿰는 마당발이라도 된다면 직장 생활은 그런대로 수월해지곤 했다. 주인과 함께 앉아있는 광경만으로도 소위, 좀 달라 보일 수 있는 곳. 일터란 일도 잘해야 하지만 누구와 밥을 먹는지도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끼니때가 되면 주인의 밥상을 모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집인이 목청을 높이면 솔깃해진 군중은 웅성거렸다. 오늘은 과연 누가 겸상을 하게 될까. 누군가 먼저 손을 들었다. 모집인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슬쩍 끼워 넣었다. 그는 주인에게 명단을 올리고, 주인은 자신의 밥상을 채울 사람을 정했다. 주인의 테이블엔 모집인과 선택받은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직장인이 신념을 갖기란 참 어렵다. 가진다 해도 계속 유지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그렇게 다수가 향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야 어쩐지 더 안심되는 것. 그런 게 바로 직장 생활이었다. 주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주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다시 고개를 숙이며, 직장인은 주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일 자신을 버리고 산다. 나 역시 한때 저 밥상에 합류하기 위해 수저도 놓고 물도 따르며 열심히 수발을 들었다. 어쩌다 그 밥상에 앉기도 했지만, 그저 하룻밤 꿈일 뿐. 주인의 밥상에는 손만 번쩍 든다고 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부름을 받아야만 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모든 직장인은 입사하는 순간 멈추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점점 속도를 높이는 그 움직이는 계단 위에서 사람들은 바삐 주변을 살피다 차츰 자신을 잃어간다. 욕심과 욕심이 만나면 계단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가속도가 붙으면 걷던 사람들도 뛰기 시작했다. 누구도 타인의 기대대로 살 수 없건만, 우린 주인과의 겸상에 자신의 성공을 걸곤 한다. 신입 시절 하늘 같던 선배들은 주인 앞에만 서면 신입이었던 나처럼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수십 년 수저를 놓아 봐도 주인 근처에도 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세대가 바뀌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건 주인의 밥상은 주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을 앞세운 모집인의 밥상, 주인의 밥상을 차리던 모집인은 결국, 자신의 밥상을 만들 것이다.

누군가 어떤 회사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그 회사의 식당에 가보라고 말할 것이다. 그곳에 서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숫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테이블이 따로 있지 않은 회사. 낡고 허름한 밥상머리에 직원들과 어울려 앉아 거친 밥 한술 달고 맛있게 뜨는 주인이 사는 곳, 그 사람이 앉은 자리가 곧 주인의 밥상이 되는 그런 회사를 그려본다.

주인의 테이블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목청을 높이는 저 부끄러운 모집인. 오늘만큼은 회사를 벗어나 혼밥을 먹어야겠다. 긴 세월, 멈추지 않는 저 마력의 계단 위에서 나 자신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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