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 나루터 / 석오균

 

삼강 주막에 들렀다. 이는 조선 말기의 전통 주막으로 경북 예천군에 위치한다. 이곳 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에게 숙식처를 제공하던 곳이다.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2005년 11월 20일이다. 그 해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바로 옆에 50대의 세 남자와 나란히 했다. 그들은 자칭 비공인 삼강나루 해설사, ‘삼강 트리오’라 했다. 농한기에만 가끔 나와 방문객들에게 해설 기부를 한단다. 닉네임이 나이와 생일 순으로 ‘낙동강’, ‘내성천’, ‘금천’ 이라고 했다.. 술 한 잔도 권하기 전에 생소한 두 나그네에게 많은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삼강은 세 개의 강이 합쳐진 이름이다. 대개 두 개의 강이 합류하여 보다 큰 강을 이루는 것이 예사이다. 이곳은 세 개의 강이 모이고 있다. 탐방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이런 연유이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선달산에서 발원한 내성천과 문경시 새재의 초점에서 발원한 금천, 그리고 강원도 태백시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서 합류하니 이곳이 삼강나루터다. ‘한 배 타고 세 물 건넌다.’는 그런 지형이다. 상주의 옛 이름이 낙양인데 그 동쪽에 흐르는 강이기 때문에 낙동강의 어원이 되었다.

잠시 보부상이 되어 보고 싶었다. 부추 부침개와 도토리묵 그리고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켰다. 부엌을 들여다보니 벽면에 온통 낙서 투성이다. 보릿고개에 마신 술값을 가을 추수 후에 갚는 ‘가내기’ 라는 풍습이 있었다. 6·25 한국전쟁 전후해서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에는 흔한 것이었다. 주방 벽면에는 글을 몰랐던 36살 중년 때부터 부엌칼이나 불쏘시개로 흙벽에 비스듬히 선을 그어 단골들의 외상값을 표기한 것이 벽면을 메웠다. 이것이 유옥연 할머니가 개발한 ‘가내기 문자’란다. 셋이서 둘에게 옛 얘기를 풀어내니 안주가 푸짐하여 술맛이 여느 때보다 입맛을 당겼다.

보부상이란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다. 조선시대엔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발달하였는데 원래 명칭은 ‘부보상’이었다.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가 연상되었다. 봇짐은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려고 보(褓)에 싼 짐을 말하는데,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메고 다니며 파는 사람을 봇짐장수라 하고, 일용품 따위 물건을 등에 지고 팔러 다니는 장수를 등짐장수라 한다. 나그네가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싸서 등에 지고 다닌 것은 유행가에도 등장한 괴나리봇짐이고, 과거를 보러 가는 가난한 선비의 봇짐에는 문방사우와 갈아입을 옷과 용돈 등이 들어 있는 것은 선비 봇짐이라고 한다. 술판이 끝날 무렵에 비가 나리기 시작했다. 이슬비보다 빗줄기가 제법 굵게 주적주적 내린다. 애타는 농부들이나 산불예방에 그 무엇보다 고마운 단비이리라. ‘부침개’를 경상도 지방엔 ‘지짐’이라고도 한다. 이는 부침개 부칠 때의 소리와 비 오는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 올 때 지짐 생각이 더 나고 술맛도 더 나는 연유일는지.

이번엔 소금장수들이 술 마시고 잠잤던 곳으로 가보았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어느 소금 거상의 얘기를 들려준다. 낙동강 하구언에서 배 세 척에다 소금을 그득 싣고 삼강나루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에는 소금의 쓰임이 금보다 좋아 부르는 것이 값이다. 대개 구매가격의 40배를 남기고 팔았다. 그는 순식간에 돈 쌈지가 두둑해지자 으레 주점으로 향했다. 수백리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 피로를 풀기 위해 술판을 벌였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니 술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술시중을 드는 여인이 선년들 이처럼 예쁠까. 하룻밤을 함께하는데 배 한 척에 실었던 소금 값이란다. 그 엑스터시에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 황홀함에 두 번째 밤도 세 번째 밤도 치르고 말았다. 소금 값을 몽땅 그 여인에게 바친 것이다. 아직 몽롱한 상태에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그 여인의 아랫도리를 해쳐놓고 오행시로 푸념을 털어 달래 보았다.

멀리서 보면 청산의 계곡 같고

가까이서 보면 죽은 말 눈깔 같구나.

두 입술 속에 이빨 하나 없건만

배 세 척 분량의 소금을 능히 먹어 치우는 구나

그러고도 짜다는 말 한마디 않는구려.

 

遠視靑山谷 近視死馬目

兩脣無齒之 能食三鹽船

食後無聲鹽

어느 방외사(方外士)가 훈수한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는 10배가 남고, 권력을 잡으면 100배 남는 장사이고, 종교는 1,000배가 남는 장사라고. 소금을 40배나 폭리를 하고 주색으로 배 세 척 분량의 소금 값을 삼강나루에서 삼일 만에 모두 탕진했으니…. 아, 원통하다 청산곡이여! 애통하다 사마목이여! 삼강 나루터에서 외치노라.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한없이 야속하구나. 여행은 돌아보기 위해 떠나는 여정(旅情)일진대, “빛과 소금이 되라.” 는 옛 성현의 가르침을 역행한 듯하여 돌아가는 그 소금 장수의 발자국 무게를 가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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