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孤) / 정재순

 

여인의 머리 위에 꽃숭어리가 눈부시다. 쇄골로 살포시 내린 꽃잎에 나비가 앉을 듯 말듯 망설인다. 그림 제목은 ‘고(孤)’다.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모자랄 처연한 눈빛과 외로움을 애써 잊으려는 희미한 입가의 미소가 눈을 붙든다. 내 고독의 원형을 만난 것처럼 멍히 바라보고 서 있다.

어깨 위 나비와 머리의 화사한 꽃 빛깔이 묘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의 눈망울은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꽃을 한가득 올렸으나 그 뒤에 숨은 고독은 어찌할 수 없었나보다. 인생의 실패와 좌절로 겪은 아픔을 고유의 색채와 향기를 지닌 꽃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갔다. 신혼시절, 달력에 실린 그림이 마음속으로 쑥 들어와 액자에 담아두고 한참을 그 앞에 머무르곤 했다. 연보라 꽃 무리를 면사포처럼 머리 위로 드리운 여인의 옆모습이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눈동자와 파리한 입술이 애틋하였다. 천화백의 그림이라는 걸 알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우연히 TV 토크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를 보았다. 독특한 차림새와 톡톡 튀는 솔직한 말투가 인상 깊었다.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한이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에 서려 있다고 했다. 눈은 광채가 날 때까지, 꽃은 하늘하늘해질 때까지 정교한 붓질로 색을 입힌다고도 했다.

화가는 자신의 손에 쥐어 보일 수 없는 내면 깊숙한 곳의 감정을 화폭에 담아낸다. 그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작품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오묘한 분위기가 난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 눈빛이 담담한 가운데 무엇인가를 깊이 응시한다. 눈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풍과 채색도 특이하다. 사차원의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초월적인 힘이 느껴진다.

천 화백의 삶을 들여다본다. 고흥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 뒤 가세가 기울어지고 첫 남편의 요절, 폐병을 앓던 여동생의 죽음,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해 파란과 역경이 이어진다. 삶의 아득한 터널을 건너면서 허무와 고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무서워서 진저리를 치면서도 슬픈 삶에 저항이라도 하듯 꿈틀거리는 뱀 앞에서 스케치한다. 마침내 화폭을 서른다섯 마리의 푸른 독사로 가득 채운 ‘생태’가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뱀의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머리에 꽃이나 뱀을 얹는 것도 한이 많아서일 것이다.

느닷없이 미인도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림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천 화백의 작품을 복제해 판매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작가는 결코 그린 적이 없다며, 내가 낳은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진품으로 둔갑시켜 굴레를 씌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그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자신의 그림들에게 잘 있었느냐, 고 얘기하며 피붙이처럼 대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갔다. 그에게 절필은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득이 되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은 거짓임을 알고도 권력을 거머쥔 쪽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도무지 통하지 않는 막막한 말 앞에 얼마나 애통하였을까.

 

그림에 대한 그의 열망은 한결같았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72세에 회고전을 치룬 뒤, 구십 여점의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딸이 있는 뉴욕으로 떠났다. 뇌일혈로 쓰러진 그는 2015년 여름, 이국땅에서 쓸쓸히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미인도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미술관에 그를 만나러 갈 적마다 관람자인 나를 지그시 쳐다보던 그 눈빛이 아니다.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였던 길례 언니도 윤사월의 여인도 수녀마저도, 세상을 꿰뚫어 보는 듯 서늘한 눈빛이었다. 흐릿한 눈에서는 도무지 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이 작업실이고 침실이 화실이었던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그림을 그렸다. 물감그릇을 쭉 늘어놓고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모습을 보자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열정을 품은 그는 사랑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꾸며서 말할 줄을 몰랐고 아찔하게 감각적이었다.

신혼시절부터 나와 함께한 작품 ‘사월’은 숱한 붓질의 흔적이 배어나온다. 연보라색 꽃과 주홍부전나비가 상상의 나래를 편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사월인데도 여인의 입술에는 붉은 기가 없다. 눈초리에 숨길 수 없는 고독의 그림자가 묻어난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의 상반된 세계가 끝없이 반복된다. 웃을 수 있는 시간은 잠깐이고, 고통과 번민이 팔 할을 차지한다. 누구나 현실을 뛰어넘고자 환상을 좇는 것일까. 어느 시인은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날 때, 눈물로도 숨길 수 없을 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적는다고 했다.

1924년생 천경자, 슬픔의 현을 건드려 꽃과 여인을 화폭에 담으며 안간힘을 다해 고독을 견뎠다. 그림으로 그의 삶은 완성되었으리라. 그는 그려야 사는 여자였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