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사람들 / 조이섭

 

 

지인의 작품 전시 개막식이다. 예사 전시회와 달리,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가득하고 화환이 즐비하다. 웬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뜻밖에 작은 문화단체장 선거 출정식을 겸하는 자리라고 한다.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진다. 지인의 업적을 치켜세우거나, 지역 문화 예술계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둥 상찬의 발림소리가 넘친다. 그다음에는 밑도 끝도 없는 제 자랑에 여념이 없다. 정작 주인공은 차례가 오자 간단한 인사말로 끝을 맺는다. 축하 인사받기 바쁜 지인의 눈도장을 찍기 바쁘게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오고 만다.

귀하신 분들의 축사나 인사말 첫머리와 끝에는 약속이나 한 듯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국회의원, 기관장, 부서장, 회장, 사장님과 그 밖의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 있다. 나는 공연히 ‘그 밖의 사람’이 되어 금 바깥으로 밀리고 보니 마음이 허탈하다.

여태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행사나 모임에서 내가 ‘그 안’의 사람이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나와 아이들 결혼식, 몇 안 되는 상을 받았을 때 정도이다. 그마저도 수상자 대표가 아니어서 ‘그 밖의 수상자’에 속했으니 참으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그 밖의 사람들이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말한다. 아니, 내세울 만한 게 변변찮아서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두운 골목길에 다 타서 내다 버린 연탄재, 옆구리가 터질 만큼 부풀어 오른 종량제 봉투이거나 구석에 숨어 있는 까만 비닐봉지이다. 그도 아니면, 전봇대의 알맞은 눈높이에 붙어 나부끼는 ‘월세 있음’ 광고지일 수도 있다. 세로로 칼집을 내어 만든 전화번호를 누가 몇 개 떼어갔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시시한 사물 같은 존재가 바로 그 밖의 사람들이다.

어느 조직이든 어디에나 있는 그들은 무대배경에 불과하다. 주인공 뒤에서 병풍 역할을 하거나 풍경에 지나지 않지만, 마치 처음부터 거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너무도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 무관심할 뿐, 멸시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밖의 사람은 흔히 말하는 주변인※1이나 경계인※2과 다르다. 비슷한 의미인 아웃사이더나 이방인과도 다르다. 주변인 등은 스스로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밖의 사람은 자기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부지불식간에 밀려나 앉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고, 존재에 걸맞은 권력에의 의지도 있다.

나를 바깥으로 밀어낸, 나와 별 상관도 없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모든 사람이 동경해 마지않는 욕망의 블랙홀에서 사는 그들은 주인공인지라 단상에 오르거나 앞줄에 앉는다. 누군가가 본인을 그 밖의 사람 취급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 밖의 사람 대우받느니 차라리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정치하는 사람, 돈 자랑하고 싶은 사람, 높은 지위를 내세우려는 사람, 심지어 과거에 높은 자리에 있었다고 뻐기고 싶은 사람까지 단상을 쳐다본다. 그 안에 한 발이라도 들이밀어 보려고 기웃댄다. 그곳에서 그 밖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어떤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도 영원히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나면 점점 밖으로 밀려 나와 그 밖의 사람이 되고 만다.

이렇듯 생각이 어지러운 것은 나도 그 밖이 아닌, 그 안에 속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찬 탓이리라. 하기야, 생명을 가진 무엇인들 그런 마음이 없으랴. 눈도 뜨지 않은 새끼 새는 어미의 기척만 들려도 입이 찢어지게 짹짹거린다. 노란 개나리꽃, 소나무 밑의 풀 한 포기라도 햇살 한 자락 더 받으려고 고개를 디밀지 않던가.

석양을 등에 지고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른다. 시장통 입구 좌판 위에 먹음직한 홍시 몇 무더기가 놓여 있다. 홍시 안에는 주홍빛 속살이 단단한 씨 몇 개를 감싸고 있을 테다. 홍시를 먹는 사람들은 가운데 박혀 있는 씨앗을 골라 뱉어낸다. 홍시의 가치는 안에 있는 씨가 아니라, 씨앗 바깥의 달착지근한 속살에 있다고 우겨보지만, 목이 자꾸 움츠러드는 것은 꽁무니바람 탓만은 아니다. 그보다 옹졸한 나의 자격지심自激之心에 더한 용심用心탓이 훨씬 더 크다.

해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리. 그곳에는 축 처진 어깨에 매달려 들어오는 나를 ‘그 안의 사람’으로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가족이 있다.

 

※1: 주변인은 둘 또는 그 이상의 갈등적·사회문화적 체계들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어느 한 가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2: 경계인이란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금방 버릴 수 없고,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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