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 조문자

 

 

아껴가며 맞이할 수도, 당겨서 맞이할 수도 없다. 남에게 줄 수도, 남의 것을 가질 수도 없다. 세월의 몫은 누구에게나 같다.

색상이 도드라지거나 무늬만 보아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옷은 촌스럽다. 독특한 디자인에 단순한 색이 오히려 멋스럽다. 주름살을 은폐하고 시집 잘 갔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려면 옷부터 잘 입고 봐야 하니까. 짝퉁 명품이지만 핸드백과 구두는 있는데 그럴싸한 옷이 없다. 그놈의 동창회 때문에 신경 좀 썼다.

다른 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듯싶은 보통 날이다. 한 철 태양이 머물다간 여자들이지만 좋았던 때가 있었던 우리는 살아있으므로 향기로웠다. 미자, 쌀봉이, 몽자, 말덕이, 춘심이, 옥순이 이름만은 그대로다. 입에 발동기를 달았는지 제주도 배가 닿은 완도항만큼 만나자마자 호도깝스럽다.

이름마저 ‘미’ 자가 들어 있는 미자는 그 푸르던 날에도 미모로 향내 풍기던 얘였다. 어디가 허린지 어디가 궁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메주 볼이 나오고 뚱뚱한 여편네가 되어버린 우리하곤 여전히 달랐다. 홍콩 영화에 나온 장 마담이 썼을 법한 선글라스에 귀고리가 가붓한 공항패션이다. 오다가 터미널에서 오천 원 주고 샀다며 몸에 착 달라붙는 쫄바지를 날렵한 손가락으로 잡아 튕긴다. 누군, 이번 달 야근 수당 챙겨 들고 지하상가 골목골목 휘돌아 기역 자길 몇 군데 제치고 산 옷이건만 오다가 터미널에서 가볍게 사 입었다니.

부류는 부류를 단번에 알아본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들이닥치자마자 옷값부터 밝히는 미자의 본심이 예민한 신경 줄을 탄다. 오천 원짜리 옷을 입어도 꽃띠 같지 않냐는 우월감이 수세미 속보다 훤히 보인다. 아무도 모르는 송곳 같은 내 자존심이 팍 휘어진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추측은 적중했다. 미자가 쏘아 올린 화살이 겨울잠에서 방금 깨어난 곰같이 성미 여유작작한 몽자 가슴팍에 꽂혔다.

“너는 지금도 이뻐서 오천 원짜리도 오십만 원짜리 같이 멋져야. 나는 아무리 비싼 옷을 입어도 만날 사람들이 멋 좀 내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어야”

눈빛만으로도 강해 보이는 말덕이는 늘그막의 대학원생이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에 자식 같은 애들 속에 끼여 공부하려니 죽을 맛이라는 거다. 푸념인지 자랑인지 노점에 물건을 늘어놓듯 장광설이 끝도 없다. 그때 안정적인 사업에 몸담은 집으로 시집갔다고 소문이 떠들썩했던 쌀봉이가 수제비 반죽 뭉개듯 말덕이의 장광설을 일축하며 큰소리로 외친다.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우와 짝짝.”

형광등이 여인들의 박속 같은 잇새에서 하얗게 흔들린다. 돈 많은 쌀봉이가 지식 많은 말덕이 기를 꺾었다. 빨랫방망이에 맞아 풀이 죽은 옷가지 꼴이 된 말덕이는 슬그머니 벽 쪽으로 가서 앉는다.

일류대학 수석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을 둔 춘심이가 들이당짝 분위기를 낚아챈다. 넨장맞을, 왜 이리 내 차례가 느리게 올까 하는 표정이다.

“우리 아들 예일대학에서 장학금 받았어.”

다른 말엔 심드렁하던 여인들이 자식 자랑만큼은 귀가 번쩍 뜨인다. 악착같이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던가. 소주 마시면서 양주 마실 날을 꿈꾸고 버스 타면서 자가용 굴릴 날을 기약했다. 춘심이 자존심에 광발이 서고 나는 곧 불면의 밤을 직감했다.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오독오독 문지르던 옥순이가 이때가 아니면 영영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는지 고개를 발딱 세운다. 딸이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밑도 끝도 없이 ‘카이스트’ 단어를 힘주어 뱉은 후 포플린 치맛자락 흔들며 헤실바실 방을 나간다. 말릴 수 없는 힘이랄까. 말하는 모습이 하도 진지해 오히려 듣는 쪽이 어색할 지경이랄까.

방바닥에 등을 대고 퍼질러 누워 있던 여인들은 얼떨결에 몸을 일으킨다. 이 고도의 심리전에서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떠드니?” 등 뒤에서 환히 비추는 강렬한 빛이 있었으니 운명의 멱살을 손아귀에 쥔 세월이다. 서로의 얼굴에서 세월을 보고 있었다. 옷 잘 입은 여자도, 얼굴 예쁜 여자도, 지식 많은 여자도, 시집 잘 간 여자도, 자식 잘 둔 여자도 사실은 그 빛 앞에선 맥을 못추었다. 입때껏 보호막이라 믿었던 것들이 짜부라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곧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별이었다. 영롱하고 찬란한 별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별똥별이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가를. 내가 붙들고 있는 게 아무것도 아님을 나를 드높여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무청보다 싱싱했던 시절이 가고 엉덩이 펑퍼짐한 불혹을 보내고 나니 몸에는 진이 빠져나갔고 머릿속은 휑하니 비었다. 열정은 KTX 속도로 달리는데 현실은 무궁화호에 앉아 있다. 마음은 김완선인데 몸은 이미자란 말이다.

세월은 왼쪽 어깨에 짊어진 동지다. 세월이 아니면 인간은 삶의 유치함과 서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월이 흘러가야 삶의 전문가가 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세월은 영원하다. 끝없이 치솟는 인간의 욕망을 나무이파리 쓸듯이 쓸어버린다. 파리 날개 꺾듯이 인생 훈장을 꺾어 박정희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도 300m 간격으로 가차 없이 국립묘지에 눕혀 놓는다.

다시 세월과 당당히 직면할 시간이다. 문득 내가 그럴싸하다.

<제주 수필과비평 2022년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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