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의 마지막 여름 / 전성옥

 

 

이제, 저 나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서 어떤 최후를 맞게 될까. 저 측은한 팔자를 어찌할꼬…. 길을 오갈 때마다, 나무들을 볼 때마다 속이 아린다.

양정에서 부전에 이르는 오래된 도로 '부전로', 부산의 대표적인 애완동물 거리였던 이 길이 도로 확충 공사로 어수선하고 황폐하다.

길의 좌우에 도열한 나이 든 플라타너스들. 길 가장자리에 머리를 맞대고 줄줄이 늘어서서 여름이면 푸른 그늘을 드리워주고 가을이면 노랑 숲길을 만들어 주던 나무, 그 나무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길 가운데로 내몰려 있다.

플라타너스, 하늘을 가릴 듯 무성하던 나무. 마음 가는 곳 어디라도 가지를 뻗어 나가던 힘찬 나무, 손바닥처럼 넓푸른 잎으로 태양을 향해 환호하던 나무 플라타너스, 그 싱그럽던 그들이 지금은 모지라진 빗자루처럼 볼품없는 모양새로 길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다. 무자비한 전기톱이 무성한 가지들을 댕강댕강 잘라 버린 탓이고, 도로 확충 공사가 진행되며 바깥쪽으로 길이 넓어져 버린 까닭이다. 플라타너스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해도 적응도 되지 않는 모양이나 체념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나 보다. 한여름 따가운 태양 아래 허깨비처럼… 망연히 서 있다. 잎사귀 하나 얄랑일 힘도 하늘 한번 쳐다볼 의지도 없는 듯, 그저 죽은 듯이 서 있다.

 

플라타너스는 버즘나무과 플라티누스속의 낙엽교목이다. 강한 생명력을 가져 이식이 용이하고 추위도 잘 견딘다. 적응력도 좋아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병충해도 쉽게 이겨내는 튼튼한 체력을 지녔다. 그리고, 플라타너스는 아름답다. 사철 아름답다. 다른 나무들이 모두 가지는 덕목인 봄의 신록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뿐만 아니라 겨울조차 아름답다. 잎이 다 떨어져 버린 마른 가지에 달랑달랑 방울열매들을 달고 있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씨앗을 꼭꼭 채워 넣은 그 방울들을 쌩쌩 부는 찬바람에 하나라도 잃을까 온몸의 근육을 꽉 조인 채 겨울을 난다. 굳세게 아름답다.

이렇듯 사철 아름다운 나무지만 플라타너스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여름이다. 지열이 후끈대고 하늘이 끓는 듯한 열기 속에서도 푸르디푸른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그 모습은 고대인의 눈에도 칭송할 만하였던지 플라타너스는 신화 속에도 등장한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 플라타노스가 쌍둥이 오라비의 죽음을 슬퍼하다 플라타너스가 되었다며 이 나무를 태양의 일족으로 받들었다.

태양,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의 강력한 군주들은 모두 자신을 태양과 결부시켰다. 한때는 로마제국만큼이나 강력했다는 크메르 왕국, 그 앙코르왓의 주인인 '수르야 바르만'과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파차쿠티'도 자신들을 태양의 아들이라 칭했고, 이집트의 파라오 역시 태양신의 대변자로 지극한 섬김을 받았다. 그런 만큼 태양신의 손녀라는 말은 이 나무가 최고의 나무, 최선의 아름다움을 갖춘 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각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던지 이 나무는 한순간에 국토를 점령했다. 압제와 전란을 겪으며 피폐해진 우리의 황톳길에 플라타너스만큼 알맞은 나무도 없었던 까닭이었다. 더욱이 재건이 국가 명제였던 시절, 그 힘찬 기상과 푸른 생명력은 성장과 발전의 표상이 되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여, 길이고 공원이고 학교운동장이고 가리지 않고 플라타너스가 등장했고 또 무성히 자라 올랐다. 사람들 역시 길에서고 공원에서고 학교에서고 이 나무와 같이 지내고 함께 자랐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무에 곱푸른 추억 한두 가지 쯤은 걸어 두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책장 속에 넣어 말렸던 노란 이파리의 기억이라도 말이다.

그런 플라타너스, 청춘의 상징으로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고 그들의 입을 빌어 글과 시와 노래에 등장하던 그 나무,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플라타너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먼 길에 올 제 /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 플라타너스 /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김현승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그들은 한때 가로수의 대명사였고 열정과 낭만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훌륭한 태양의 나무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훌륭함, 즉 국민가로수로 낙점 받게 하였던 그 장점들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빨리 자라 많은 그늘을 만들어 주던 무성함이 농촌에서는 작물의 생육을 방해한다며 원망을 듣고, 도시에서는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며 눈 흘김을 받는다. 더하여, 하늘을 향해 환호하던 푸른 잎들은 아예 죄인 취급을 당한다. 잎 뒷면의 보송한 솜털이 알레르기 유발인자로 밝혀진 까닭이다. 게다가 그 귀여운 방울열매, 겨우내 조롱조롱 달랑이다가 봄이 되면 바람씨앗이 되는 그 열매들도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역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낙인찍힌 탓으로 말이다.

이제 플라타너스는 슬픈 나무가 되어 버렸다. 수시로 손발이 잘리고, 윙윙대는 쇠톱에 속절없이 팔다리를 내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이유에도 가차 없는 축출을 당한다. 그동안의 수고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부전로 거리에 늘어선 저 나무들의 미래도 어둡기 짝이 없다. 아니 미래 자체가 없을 것이다. 도로확충공사와 시민공원이 만들어지는 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 이들이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또 희박하니 말이다. 지형이 변할 때 터럭 하나 다칠까 고이고이 이식의 예를 받는 금송이나 향목과 같은 대접은 애초에 꿈도 꿀 수 없다. 아마도 둥치가 베어지고 뿌리는 파내어져 각종 건축 슬러지들과 함께 이름도 모르는 낯선 곳에 버려지고 묻힐 것이다.

 

마지막을 앞 둔 플라타너스들이 처연하게 서 있는 길,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며 오갔을 길, 이 길에는 나의 어린 시절 기억도 아른아른 묻어 있다. 싼 장거리를 찾아 곧잘 부전시장을 가시곤 했던 엄마, 집에서 부전시장까지 버스 정류장 네댓 개를 지나야 하는 길을 차비가 아까운 엄마는 늘 걸어 다니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곧잘 따라 다니곤 했다. 그때 나는, 자꾸만 엄마에게서 뒤처졌다. 보폭이 작았기도 했지만, 엄마의 짐을 줄여주려 못난이 알감자 봉지를 안고 있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길에 줄지어 있는 애견가게, 그 유리창 속의 강아지들에게 눈을 빼앗겼던 탓이다.

그러던 초등학교 3학년의 어느 봄날, 순종 코카스파니엘이었던 우리 집 개 ‘돌이’가 아랫동네의 스피츠를 만나 새끼를 아홉 마리나 낳아버렸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서양종자의 예쁜 개가 어떤 이유로 산속 외딴집인 우리 집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돌이’는 어릴 적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귀도, 주둥이도 어중간한 모양을 하고 태어난 돌이의 아홉 자식에 엄마는 무척이나 난감해 했고, 결국 이 길의 어느 가게에 강아지들을 맡겨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강아지는 없고 돌이의 슬픈 눈망울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나무들은 보았을 것이다. 울면서 길을 달리는 아이를, 애견가게 유리창마다 이마를 박고 들여다보던 아이를, 되찾은 강아지들을 시장바구니에 담아 낑낑대며 들고 가는 어린아이를,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에 웃음을 물고 제 허리 아래로 차박차박 걸어가던 작은 계집아이를…. 아마, 나무들은 그 아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마지막 여름을 맞고 있다. 이제는 내가 플라티노스가 되었다. 쌍둥이 오라비의 죽음을 슬퍼하던 플라티노스처럼 나도 나무의 죽음과 길의 사라짐에 마음 아파하는 플라티노스, 나이 든 플라티노스가 되었다. 이 여름이 지나면 저 플라타너스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그 길을… 지나간다. 이제는 어릴 때처럼 걸어서 가지 않는다. 차를 타고 휭하니 스쳐 가곤 한다. 하지만 길이 파헤쳐지고부터는 천천히 지나간다. 공사 중이라 차가 밀리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도 속도를 늦춘다. 차창 너머로 오랜 친구와 눈을 맞춘다. 웃는다, 플라타너스가 하얗게 웃는다. 가까이 가 보아야겠다. 저들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가 보아야겠다. 차박차박 그들의 겨드랑이 아래를 걸어야겠다. 그리고, 오랜 친구의 허리를 하나하나 안아 주어야지. 그리고 또 말해 주어야지.

‘햇볕이 따가운 날은 푸르게 그리워하마. 오랜 수고를 잊지 않으마. 어디에 있게 되든지 늘 평안하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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