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보행과 직각보행. '직립'과 '직각'의 앞 글자는 같으나 '립'이 '각'으로 변했다. 립과 각 사이엔 세월의 그림자가 두껍다. 꼿꼿이 서 있다가 조금씩 아래로 굽힌 것이 그만 기역 자, 낫 모양이 되었다. 어머니의 모습이다. 수직에서 예각을 거쳐 직각에 이르기까지 허리는 말이 없다. 깊은 침묵은 내 언어를 줄이다, 끊어버리다, 사라지게 한다.

어머니의 82세 생신을 맞아 고향 집에 갔다. 어머니는 지난겨울 새벽 기도를 가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굽은 허리에 다치기까지 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얼굴에 내려앉은 주름은 더 깊어졌고 통증으로 주저앉은 허리는 웃음을 앗아갔다.

생신이 지나고 얼마 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똑바로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여러 검사를 마쳤다. 병원에서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바로 걷기 위해서는 다리에 근력을 기르고 허리를 펴서 걷는 연습을 하는 게 최선이란다. 물리치료를 열심히 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첨단 치료 방법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허리를 바로 세워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매일 공원 한 바퀴를 돈다. 어머니가 앞서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불안하다. 몸 전체가 힘을 잃었다. 그렇게 꼿꼿하고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가. 비틀거릴 때마다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굴곡 많은 인생을 담은 스토리가 삐져나오는 것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피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

지팡이를 짚으며 남긴 발자국 하나하나를 따라간다. 조금 가다 보면 허리가 저절로 굽어진다. '바로 펴시라고요.' 나는 틈을 허용치 않는다. 어머니의 힘든 노력과 나의 요구가 반복된다. 굽히고 펼 때마다 근거리 물상들도 오르락내리락, 기울어 가던 가정처럼 어머니와 함께 흔들린다. 얼른 어머니의 두 팔을 잡는다. "야야, 놔 봐라. 혼자 걸어야 된다고 안 켔나."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휘청거린다. 가정의 중심이 흔들렸던 그때의 찬바람이 오뉴월 꽃샘추위로 스며든다.

아버지의 우매한 담보로 여러 개의 과수원들이 통째로 넘어 간 날, 어머니가 이고 있는 하늘은 먹구름 가득, 물기 머금은 회색이었다. 부잣집 도련님 대접만 받던 아버지는 다시 햇살을 불러오기는커녕 눅눅한 날의 습기를 말리지 못했다. 큰일 앞에 허우적거리다 넘어지고 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굽은 등 사이에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는 친가와 외가 할 것 없이 염치 불구하고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녔다. 자식들 밀린 학비를 위해서도 두 발은 쉴 새 없었다. 이 친척에게 빌려서 막고 저 친척에게 돌려서 막으며 얼마나 많이 허리를 굽혔을까. 어머니 허리춤에 매달린 식구들 또한 가는 허리를 얼마나 많이 파먹었던가.

한나절의 뜨거운 햇살이 내 시선을 훑어가다 심장 안으로 훅 들어온다. 어머니의 굽히고 파먹히던 그 허리로 굶주린 식솔들의 배를 채웠던, 과거의 영사기가 돌아간다. 왈칵 슬픔이 차오른다. 삶을 아우르기 힘들었고, 돈의 덫에 걸려 용트림하던 지난날의 시간의 옹이 진다. 떼내고 털어내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들.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어머니는 벌써 저 멀리서 운동기구를 찾고 있다.

바삐 걸음을 옮겼다. 두 개 나란히 놓인 허리운동기구 앞에 섰다. 나도 어머니도 그 위에 누웠다.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지난 시간이 오늘 같았으면 좋으련만. 아니야, 과거가 없으면 모녀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있기나 할까. 몸을 일으키고 어머니도 일으켜 드렸다. 내 손을 놓으면 곧 앞으로 넘어질 것 같다. 그동안 누웠다, 앉았다, 일어날 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이제 반대쪽 길을 걸을 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참 못났다.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 곁에서 많이 보살펴 드렸는데, 나는 내 살기 바쁘고 시아버지까지 돌봐야 한다며 핑계만 둘러대지 않았나. 못 본 척 무심히 눈 감고 오기를 십수 년이다. 길가의 원추리 꽃이 내 속내를 안다는 듯 웃음을 흘린다. 미안함과 후회스러움을 얼른 잊고 싶어 두 팔 벌러 허리를 안는다. 그리고 걷기 연습을 할 만한지 여쭤본다.

"십수 년 굽은 허리가 금방 나아지겠냐."

'굽은 허리에 감시자도 파수꾼도 되지 못한 무심함을 용서하셔요. 걷기 연습을 하다 보면 푸른 시절 당당했던 그 걸음걸이를 다시 볼 수 있겠지요.'

걸을 때의 어설픔, 굽어질 때의 고달픔, 다시 일어설 때의 아픔. 어설픔, 고달픔, 아픔의 '~품' 속을 무던히도 감내해온 허리, 난 그 슬픔을 아는 데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공원 한 바퀴 돌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어머니를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순간이 잠시 지나가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고 귀한 시간이기를 다짐해 본다. 시작이 반이라. 우리 집에 계실 동안이라도 뻣뻣했던 허리가 부드러워져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면 좋겠다.

서산을 넘는 해는 흰빛 햇무리를 남긴다. 햇무리가 만든 테두리를 바라본다. 석양은 곧 여명이 되고 소멸은 생성이 되는 이치. 해가 지고 해가 뜨며 어둠은 밝음으로, 불편함은 편함으로. 어제의 직각은 내일의 직립으로 변할 것을 상상한다. 직각이 남긴 짙은 그림자도 옅어지며 어머니와 난 동네 공원을 나란히 손잡고 걸으리라. 말 없던 허리도, 내 닫힌 언어도 꿈틀꿈틀. 푸른 시절, 푸른 보행을 그리며 미래의 그날을 기다린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자연을 거두는 농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