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의 질서장 / 이정화

 

 

저 멀리서 쏜살같이 그분이 오신다. 만사를 제쳐놓고 서둘러 종이와 연필을 찾지만 불현 듯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금 붙잡지 않으면 잽싸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와 같다. 일단 흘려버리면 되찾으려 해도 소용없다. 순간을 붙잡는 것만이 상책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것을 기다리며 머리맡에도, 책상 위에도, 가방 안에도, 손이 닿는 곳에는 메모장을 놓아둔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문장머리를 간신히 잡아들고 어싯비싯 하다보면 몸통은 떨어져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잊을세라 허리 깍지 끼듯 문장을 곱씹어가며 받아쓰다보면, 어이없게도 뒷부분은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찾을 수가 없다. 이미지 언저리에서 헤매며 멀리 달아나 버린 글맥이 무엇이었을까. 되찾아 보려고 서성댄다. 입안에 맴돌 듯 말 듯 애가 탄다.

‘질주疾走’는 빨리 달린다는 뜻이다. 빠른 걸음으로 달리는 게 질주라면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두 발의 속도감이 가쁜 숨과 함께 느껴진다. 생각이란 것도 느린 걸음보다는 달리는 쪽이다. 얼른 받아쓰지 않으면 놓쳐 버린다. ‘질서疾書’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 선비들도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잊기 전에 질서장疾書場에 재빨리 받아두었던 데서 유래한다. 연암 박지원의『호질』은 열하를 여행하던 연암이 중국 소주의 술집 벽에 적혀 있던 이야기를 베껴 쓴 것이다. 연암이 재바르게 옮겨 쓰지 않았다면 떠돌던 설화는 영원히 묻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텍쥐베리는 오랫동안 상상해 오던 소년을 냅킨에 그렸다가 『어린왕자』를 출간하게 되었다.

기록 본능은 원시시대부터 비롯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돌에다 상형문자를 쪼았다. 수메르인이 진흙에 쐐기문자를 새기면서 서술기술이 급격히 발전하였다. 나중에 갈대로 파피루스를 만들지만 물에 젖으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결점이 있었다. 재료가 냅킨이든 돌멩이든 나무껍질이든 기록해 둔 것들이 남아있어 역사를 만든다.

돌잡이 때 연필을 선택하는 일도 질주의 첫걸음과 같다. 아기들은 어느 때가 되면 색연필 한 자루를 들고 작은 종이위에서 그리기를 시작한다. 줄을 긋고 원을 만들고 마침내 형태를 만들어낸다. 방바닥에 펼쳐진 도화지를 넘어서면 본격적인 상상의 출발점이 된다. 바닥에 색을 입히던 아이는 직립의 다리로 서서 벽을 탐닉한다. 자신만의 서사로 사방의 벽을 점령해 나간다.

인간의 기록도 나아간다. 아이는 자라서 『동몽선습』을 떼고 『소학』이 몸에 스며들어 학문의 세계를 엿본다. 『시경 질서』와 『논어 질서』는 성호 이익의 글을 모은 문집이다. 궁리를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해서 책으로 엮은 것들이다. 그렇게 채집한 언어들이 책이 되어 고금을 넘나든다.

친정집 안방에는 작은 책상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옆 메리야스 상자엔 달력을 잘라 만든 빈 쪽지가 언제나 수북했다. 평소에는 딱히 눈여겨 볼일 없는 종이 쪼가리였다.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사남매 여덟 명이 살림살이를 정리하려고 장롱을 열었다. 그 흔한 명품가방 하나 없는 옷장에는 두툼한 공책 여러 권과 종류별로 묶어 둔 메모장이 장롱 서랍을 가득 채웠다. 자식들과 주고받은 편지, 사계절 요리와 주전부리 간식을 기록한 공책, 일 년 먹을 깨와 콩과 팥 그리고 엿기름 만들 보리 구입한 날짜와 수량, 연락처, 가격 하나하나를 적은 쪽지들이었다.

잃어버린 문장들은 모두 여기 모인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는 삶 자체였나 보다. 도르르 말아놓은 두루마리에는 여행을 다녀온 후기를 단정한 수를 놓듯 참한 글씨로 써 두었다. 누렇게 변색된 일기장에는 집안을 지켜내려는 여인의 고단한 삶이 녹아내렸다. 화선지 위에 한자 획들이 갈매기처럼 끼룩끼룩 날아다니고, 한시를 적어 놓은 달력 뒷장도 살뜰하게 모아두었다.

어머니는 요조숙녀로 자랐지만 먹고 살기 위해 기운 드센 여장부가 되어 가정을 이끌었다. 한갓진 노년이 되어서는 다시 여성문객이 되었나보다. 누가 부를 때 받아썼던 걸까. 긴긴 밤에 불렀던 노래가사들이 삼삼오오 줄을 맞춘다. 급하게 써내려간 트로트 가사는 열기에 녹아내리는 아지랑이처럼 사분오열 직전의 모습이었다. 음담패설도 일일이 필사해서 공책에 풀로 붙여 꼼꼼하게 정리까지 해 놓았다. 딸네 계모임이나 문중 며느리 모임에 가서도 걸죽한 패설로 좌중을 휘어잡기 위해서였을 게다. 어머니의 질서장은 요즈음의 자서전이자 자신이 남긴 평전격인 셈이다.

어머니는 엄혹한 층층시하에 봉제사 접빈객을 모시면서도 내면의 소리를 잠재우지 않았다. 소박한 일상을 관찰과 사유로 새긴 어머니의 질서장 앞에서 회한의 눈물과 풍류의 웃음을 보았다. 하루하루를 담은 공책은 삶의 진솔한 기록이며 오래도록 저장될 뇌의 서랍장이다. 애초에 모양도 없던 인식들이 지면에 옮겨 앉으면 유형이 된다. 그러나 부모님이 고향집 벽지 위에 표시해 둔 사 남매의 키를 잰 눈금줄은 다시 무형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질서장은 기억을 기록한다. 누구든 다이어리 장부나 수첩 안에 수많은 단어와 문장과 이야기를 품었다. 산고 끝에 어떤이의 침 바른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기는 책으로 환생하면 좋으련만.

질서는 정신이 배설한 것을 적거나 끼적인다. 메모는 인생 연습의 과정이기도 했을 터이다. 완벽보다는 준비의 과정으로 본격적인 창작을 위한 예행연습에 가깝다. 비유하면 꽃을 피우기 전의 씨앗노릇 같다. 수많은 꽃씨 가운데 일부는 당장 싹을 틔우지는 못하지만 바람에 날려 뻗어나감으로써 다음을 기약한다.

내게도 글 신이 언제 찾아올까 싶어 적바림하도록 침대 옆에 수첩을 준비해 두곤 한다. 질서장은 순간의 생각을 활자로 만들어 주는 몸 바깥의 식자판과 다름없다. 갈겨 써 놓은 내 글씨를 해독 못한 적이 더러 있지만 불청객을 위해 질서疾書를 멈출 수는 없다. 규칙적인 배열로 질서秩序있게 달려오는 문장을 붙잡고 싶다.

쓸쓸해서 더 길었던 어머니의 일상은 장롱 안에서 활기찬 질서장으로 거듭났다. 나는 인드라망의 촘촘한 그물을 빠져나간 문장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종이와 펜을 들고 놓쳐버린 사유의 긴 꼬리의 흔적을 경험했던 동선을 따라가 본다. 때로는 하릴없이 낙서를 하거나 마당에 나와 그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휘리릭 유성처럼 날아든 앎의 결정체를 낚아 올린다. 어머니의 메리야쓰 상자 속 종이들이 그랬듯이, 펄럭거리던 생각이 질서장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서릿발 같은 글자 하나하나가 질서장위에서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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