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색을 읽다 / 박영란

 

 

여행 중 ‘색’을 발견했다. 그것은 빨간색이었다. 객실의 소파와 객실에 비치된 연필, 쓰레기통, 기차, 케이블카, 인부들의 작업복, 벤치, 덧문 그리고 여기저기서 휘날리는 깃발, 심지어는 검정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의 앞치마도 빨강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펼쳐진 우연처럼 보였지만, 차츰 숨은 의도가 보였다. 많은 사물들이 ‘내 이름은 빨강’이라고 외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설산과 초록의 대자연 앞에 인간이 슬쩍 방점으로 점찍은 색이 저 빨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 시선과 여유가 생긴 것은 여행의 일정이 딱 반이 지나간 그린델발트에서였다.

오월의 알프스는 눈빛으로 눈부셨고 야생화는 햇살로 싱그러웠다. 전나무의 장대한 침엽수는 산과 도시를 수벽처럼 감싸고 그 안에는 끝없이 목초지가 펼쳐졌다. 빙하가 녹은 수많은 폭포와 거대한 호수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그 초지 위로 집들은 점점이 흩어져 아득하게 보였다. 이 깔끔하고 정연한 풍광이 어느 순간 식상해질 즘, 난 빨강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이 대자연에 인간이 덧칠할 수 있는 색이 빨강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숨은 그림 찾듯 난 빨강을 찾아내었다.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 화장실의 세면기, 머그잔… 이들의 색은 마치 암호처럼 보였다. 그것을 읽어내는 자만이 느끼는 상호간의 즐거운 코드랄까. 빨강은 그렇게 불쑥불쑥 나의 눈을 찔렀다.

굉장한 시각적 효과였다. 그건 자연과 색이 만나는 조화였다. 동시에 자연의 질서를 슬쩍 깨고 싶어 하는 도발이었다. 설산의 단조로움을 자극하고 활력을 주고자 한 세련된 노력이자, 한편으로는 자연의 위험을 경고하는 듯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마치 빨강 신호등처럼. 내가 스위스 시청에 묻고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건 ‘빨강’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고자 한 결의가 보였다. 사방천지가 하양과 초록으로 뒤덮인 자연환경에 인간이 선택한 색은 노랑도 파랑도 아닌 빨강이었다. 무겁고 침묵하는 자연에 대적할 수 있는 색, 빨강은 즐겁고 쾌활하였다. 산악도시의 위엄을 깨고 경쾌하였다.

한 도시의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했다. 때론 낯선 도시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이미지가 그 도시의 특별한 인상으로 남았다.

스위스에서 내가 빨강을 찾아내었다면, 모로코의 쉐프샤우엔은 파랑을 보여주었다. 사막의 무채색 공간에서 만난 그 강렬한 색은 모든 벽과 대문, 심지어는 골목의 계단까지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푸른색의 스펙트럼 같았던 공간은 마치 동화 나라처럼 신비로웠다. 추위와 관습에 의해 긴 망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현지인들은 항상 푸른색과 겹치면서 몽환적이었다. 그들이 이방이었는지, 내가 이방인이었는지 짙은 블루 안에서는 고양이까지 현실감이 없는 독특한 느낌이었다. 여기에서는 궁핍한 삶도 세상의 고민도 다 파란색으로 통일되어버린 듯한,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골목 사이를 누비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들의 영혼에는 파란색이 찰랑일 것 같았고, 다음 생애에 나는 이곳 쉐프샤우엔에서 태어나 사진 찍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꿈을 안겨주던 곳. 그래서일까 쉐프샤우엔은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꿈속을 유영하는 듯 넘쳐났다. 거리의 형형색색의 옷은 마치 파란 캔버스에 찍힌 점박이들처럼 보였다.

도시가 선택한 색, 그건 절대 자연발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쉐프샤우엔 역시 오래전 스페인에 살았던 무어인과 유대인이 그곳에서 쫓겨나 고향의 하늘과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이 도시를 파랗게 물들였다. 과거 스위스는 남자들을 유럽의 용병으로 보냈다. 교황을 지키고 전쟁을 대신해 주고 얻은 피의 대가로 나라를 건사하였다. 스위스 국기의 붉은색은 이 나라만의 의미심장함을 상징하고 있으리라. 물론 나라마다 토양과 풍토에 맞는 색도 있지만, 거기에는 오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그 나라만의 감각이 녹아있다. 꼭 화려한 색이 아니어도 유럽의 오래된 석조 건물은 회백색 단조로움과 무게감으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가.

과연 우리에게는 도시를 상징하는 색이 있을까. 우린 색이 아니라 높이이지 않을까. 개발되고 사라지는 그 공간에 들어차는 빌딩들, 치솟은 높이와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군群. 그 모습에 우리 스스로도 압도당한다. 어딜 봐도 시선이 잘리고 갑갑하다. 색은커녕 ‘이제 그만’하고 비명을 지르고 싶다. 콘크리트 숲에 살면서 우린 회색 인간이 되어가는 듯하다.

우린 언제쯤 도시의 미관이 색채로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버스 정류장, 벤치, 가로등, 휴지통… 길 위의 이런 소소한 것들이 참신한 색으로 얼굴을 내밀 때, 이 삭막한 도시를 걷는 나는 그 색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을 텐데, 울트라마린까진 꿈꾸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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