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섬인지 여섯 섬인지 / 유병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로 눈앞의 오륙도를 입에 담는다. 섬이 다섯이라느니 여섯이라느니 고개를 이쪽 혹은 저쪽으로 갸웃거리며 헤아리기도 한다.

 남구 용호동 장자산의 남서끝자락 해안에 매달린 오륙도는 이마에 부딪칠 듯 훤하다. 성큼 건너뛰면 금방 방패섬에 닿을 듯하다. 육지에서 가까운 섬부터 헤아려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그리고 등대섬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기억이란 때로 빛이 바래지는 법이라며 그때 노트에 적었었다.

 장자산이 미처 말하지 못한 속내를 말줄임표처럼 띄엄띄엄 찍어둔 것이 섬이 되었을 것이다. 섬 이름에서 그 말줄임표가 무슨 내용인지를 대강 짐작할 수도 있어 보인다.

 오륙도가 잘 나오게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는 관람객이 있다. 그들은 아마 멀리서 온 것 같다. 무리 가운데서 누군가 배경이 짱이라고 소리를 쳤다. 배경을 살려야 기념이 된다면서 이쪽으로 저쪽으로 렌즈 안으로 사람들을 밀거나 끌어들이거나 한다. 섬이 주인공이다. 무슨 기념사진이란 것도 중요인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삥 둘러서지 않던가.

 엇둘 엇둘하는 구령이라도 붙이는 신명에 들뜬 오륙도라며 나는 가만히 있는 섬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등대섬이 횃불을 들고 올망졸망한 섬들을 거느리고 나들이하듯 어디론가 가고 있는 형상이 보인다. 초등학생 무렵 선생님을 따라 학교 인근으로 소풍을 가던 기억이 떠올라 섬 하나하나에 까마득히 사라지 친구의 이름을 불러본다.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로 이어지는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중얼대기도 한다.

 섬 구경을 하러 나들이를 나온 사람이 어쩌다 섬의 배경이 된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배경을 사전적인 뜻풀이만으로 새길 수 없을 것이라며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가 섬을 주이공으로 삼았다가 이런 저런 말놀이에 흥이 끌린다. 말놀이의 배경에 섬이 있고 섬의 배경에 말놀이가 있지 않겠는가. 배경이라는 말을 굳이 고정시킬 수 없을 것이란 풀이에 가만히 잠겨든다. 밑자리만 차지하리라고 여겼던 사람이 어느 날 으리으리한 자리로 껑충 뛰어올라 보는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하던 배경[인맥]도 어쩌다 짚어볼 수 있는 세상이다.

 오륙도를 처음 말로만 들었을 때 부산바다 저 멀리 떠 있는 섬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장자산 기슭에 형상을 보고 있으니 모자지간母子之間이나 다름없는 다정한 섬이다. 아이들을 올망졸망 거느린 등대섬인 엄마가 바다구경을 나온 것이리라. 그 아이들 이름이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 '섬' 자 돌림이지 싶다. 나도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를 넣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큰 유대감으로 형제애를 돈독하게 하는 길이란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돌림자는 형제애의 오붓한 끈이나 다름없다.

 다시 오륙도를 보고 있으니 단순한 섬만이 아니란 생각에 잠긴다. 그것은 해초를 뜯거나 조개를 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다. 그런데 그건 억지나 다름없다며 반기를 드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린다. 오륙도를 그냥 지도에서 보는 오륙도로 보자고 옆구리를 슬며시 꼬집는다. 괜히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섬에 낙서를 하는 짓이나 다름없는 노릇이라고 입을 삐죽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 장구를 쳐야하나, 그런데 또 들리는 소리가 있다. 외면으로만 보는 소견은 천편일률적인데 내면에 귀를 대면 오륙도는 보다 다양한 형상인 오륙도가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무슨 깊은 생각이 좀 있는 듯한 은근한 풀이에 슬그머니 귀가 쏠린다. 그래 이리 보건 저리 보건 그것은 생각의 흐름에 맡기기로 한다.

 밤낮 출렁이는 바닷물과 함께 하는 오륙도다. 환경에 적응하려면 오륙도 또한 그네처럼 출렁이는 섬으로 살아야 한다. 그 출렁임 속에서 은밀하게 드러나는 감추어진 뜻을 생각해 보는 일도 그런대로 어떤 몫은 되지 않겠는가.

 다섯 섬인지 여섯 섬인지 썰물 밀물 따라 나고 드는 섬, 그 어리둥절함이 눈 앞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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