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가장의 하루/ 조성현

 

 

밤 11시가 넘었다. 그녀는 앞섰고 나는 뒤를 따랐다. 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은 “따라오세요” 한마디뿐이었다. 지나는 골목은 깊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다만 전봇대에 걸려있는 백열등과 낡은 집 문간방 창문을 비집고 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심야의 어둠을 조금 밀어낸 상태였다. 그녀는 신당동 언덕배기 자신의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늦은 밤 외간남자와 한집에 있는 게 거북했는지 그녀는 방문을 모두 열고 온종일 일하느라 지친 몸을 안방 벽에 기대어 앉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나는 쪽마루에 걸터앉아 담배 한 개비를 뽑아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 몇 모금이 허기진 위장에 침투되자 생채기에 소금이라도 뿌린 듯 속이 쓰려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이러려고 회사에 들어왔나, 그냥 사표를 써버릴까?’ 나는 허공에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었다.

 

 입사한 지 8개월, 신입사원 딱지를 달고 다닐 때였다. 시골학교 선생을 하고 싶었던 나는 그해 임용고시가 없자 계속 공부만 할 수 없었다.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기에 취직을 서둘렀다. ‘그래, 시골에서 선생 못할 바에는 차라리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꿔서 사람 상대하는 영업을 해야겠다.’ 하여, 외국합작 모 회사에 입사했다. 두 달간의 연수 교육 후 나는 영업부서에 배치되었다. 영업지점에서 근무한 지 4개월 차, 회사나 사회생활 모두 초보라 험한 꼴 겪어보지 못했던 때였다. 내가 새로 담당한 지역에는 전임자의 비정상영업으로 불량처가 많았다. 특히 그 거래처는 문제가 심각했다. 장기간 결제 지연으로 제품 출고가 중지된 상태였다. 나는 그 거래처에 잔고 회수를 위해 자주 방문했었다. 어느 날 저녁 8시쯤, 마지막 방문처로 그곳을 찾았는데 역시 별 소득이 없었다. 80년대 당시,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때라 공중전화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상사에게 상황 보고하였다. 동시에 그는 명령을 내렸다.

 “거래처 문 닫을 때까지 있다가 그 집에 같이 가게. 숟가락 차고 안방에 들어앉아서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언제 결제할 건지 담판을 짓고, 아침에 출근해서 보고하게.”

 명색이 상장회사에서 거래처에 이렇게 비인격적인 행동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인사권을 지닌 상사의 명령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초로의 여대표가 운영하는 그 거래처는 몇 해 전에 남편 사업이 내리막을 달리며 함께 휘말렸다. 사업자금이 달리자 여러 거래회사에 필요량 이상을 주문하였고, 그 물품을 도매업체에 싼값에 넘겨 장만한 현금을 남편 사업체에 대주었다. 유통관리체계가 엉성하던 80년대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 상사는 부진 잔고 해결에 결정권을 쥔 남편을 만나라는 것이었다. 남편 사업체가 도산하자 여러 회사에 많은 채무를 진 그 거래처는 결제 불능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회사도 손해가 컸다. 내 전임자가 실적을 채우려 문제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곳에 과도하게 출고시켰고, 시중에 덤핑 제품이 흘러 유통질서 교란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 당시에는 전산도 없고 영업관리가 허술할 때였다. 불량 잔고가 회수되지 않으면 상부에서는 전임자와 내 상사에게 중징계를 내릴 것이므로 상사는 나를 계속 볶아 대었다.

 

 저녁도 굶은 채 밤 11시, 거래처 셔터 내릴 때 따라 일어섰다.

 “영업소장님 지시입니다. 사장님 집에 가서 바깥어른 뵙고 언제 결제할 건지 확답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내 말에 여사장은 남편이 계속 집에 안 들어오는데 뭐 하러 집에서 기다리느냐며 퉁명스럽게 내뱉었지만 난 상사의 엄중한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러 회사에서 시달림을 당해서 그런지 그녀도 더 이상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약 20분을 걸어 신당동 언덕배기 허름한 집에 들어섰다. 이 집도 전세라 하는데 이미 다른 회사에서 전세금 차압을 하여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돌아가 달라는 말도 없이 안방 한편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처음이 아닌 듯했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며 내가 지쳐갔다. 아침 7시 반에 출근하면 방문 예정처 하나하나의 상황을 점검하고, 어떤 활동을 할지 계획을 세우며 브로셔와 판촉물도 챙기고, 일지 쓰고 등등 담배를 입에 물고 정신없이 일한다. 출장 나와 거래처를 방문하여 고객과 주문 상담하다 보면 저녁에는 눈이 쑥 기어들어 갈 정도로 지친다. 게다가 오늘은 이 거래처 신경 쓰느라 저녁도 걸렀으니 몸이 더욱 처졌다. 마루에 걸터앉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담배만 계속 피워 대는 것뿐이었다. 주린 배와 몸만 지친 게 아니었다. 정신도 지쳐갔다. 아무리 채권 채무 관계라 할지라도 새벽 한 시가 넘어 남의 집에 앉아 있는 내 꼴이 초라해 보였다. 그녀도 얼마나 힘들까, 종일 사업장에서 고객들 상대하며 상담, 판매하느라 파김치가 되었을 게 뻔하다. 어서 쉬어야 내일 또 일하러 나갈 텐데, 누워 쉬지도 못하고 멀거니 앉아 있는 그녀에게 나는 미안한 생각이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앉아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나도 학비 벌려고 이것저것 고생도 많이 해 봤는데, 이건 아니잖아? 내일부터 당장 회사에 나가지 말고, 마누라에게 여차 저차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그렇게 되면 우리 두 식구 밥숟가락은 어디서 챙기나.’ 오만 가지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두 시가 넘어 세 시가 가까워 올 때쯤 졸지도 않고 안방에 앉아 축 늘어져 있던 그녀에게 말했다.

 “저,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이 새벽까지 남의 집에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요. 결제고 뭐고 당장은 모르겠어요. 집에 갈 겁니다. 그 대신 나중에 저희 소장님 만나면 제가 아침까지 남편분 기다리다 간 걸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집을 나서며 텁텁한 입에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심야시간이라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골목길에는 문간방 불빛도 꺼지고, 갓을 쓴 백열등만이 나의 뒷모습을 비추었다.

 택시 잡아타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초췌한 내 얼굴을 보며 저녁밥은 먹었냐는 아내의 물음에 굶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서너 시간 후에는 일어나 출근해야겠기에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웅크리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당장에 때려치우고 싶지만 요즘 취직하기 얼마나 어려우냐, 그만두면 뭐 할 건데? 집에서 나만 바라보는 마누라와 뱃속의 애는 어쩌라고?’ 잠은 안 오고 머리만 복잡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깰까봐 뒤척이지도 못한 채 뜬눈으로 셋방 창에 스며드는 새벽을 맞고 있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