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를 위하여 / 강천

 

나는 꽃. 전시장에 놓인 거뭇한 화분이 나의 보금자리. 갖가지 모양과 색상으로 조작된 가면이 나의 얼굴. 사람들의 환호와 탄성은 나의 밥벌이. 유식한 척하며 자랑삼아 휘갈겨놓은 율시 몇 구가 나의 상징. 족보를 잃어 가설만 분분한 탄생 비화가 나의 정체성. 본디 것이라고 할 만한 속성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국화라 부른다.

나의 선조는 아주 소심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푸새들이 왕성하게 자라는 봄, 여름에는 기죽어 있다가 서릿발 성성한 가을 끄트머리에서야 겨우 비집고 들 틈을 마련했다. 아니, 오히려 슬기로웠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다른 종과 경쟁하지 않고, 터를 같이하는 이웃에 거의 피해를 끼치지 않으니 말이다. 집안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그 지혜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자손들을 번성시켰다. 거기에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고운 외모와 향내까지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자긍이었던 향긋함과 아름다움이 도리어 독이 되어 일족을 속박하는 족쇄가 될 줄이야 그 누구라서 알았겠는가. 인간의 눈에 띈 탓이다. 다툼을 피해 서리 밟으며 고군분투하는 삶을 두고 ‘절개를 지키느라’ 저런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 늦은 계절 멀리 있는 곤충을 유인하고자 내뿜는 향기를 ‘고매하다’며 곁에 두려는 이도 있었다. 작은 꽃으로는 도저히 중매쟁이의 눈길을 끌 수가 없었다. 궁여일책으로 만들어낸 혀꽃부리를 보고 ‘아름답게 치장했다’라며 찬탄하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비록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정도로 끝났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느 날부터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정원으로 끌어들여 제 입맛에 맞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사군자’라는 거창한 명분까지 덧씌워 유림의 표상이라고 떠받들었다. 척박하고 황량한 환경에서도 고고한 도를 잃지 않는다 하여 ‘은자’라 칭하며 서화를 짓기도 했다. 선비의 미덕이라며 ‘오상고절’이라는 관념의 옷을 입혀놓고 터무니없는 충절을 강요했다. 삶아 먹고, 고아 먹고, 말려 먹어서 불로장생했다고 아예 ‘장수화’라 떠들면서 괴롭히기 다반사다. 어디 그뿐인가. 망자의 영혼이 저승에서도 평화롭기를 바란다며 내 허리를 분질러서 바친다. 죽음으로서 죽음을 위로하니, 나의 희생은 누가 위문해 줄 것인지 어찌 되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래에 들어서는 더욱 가관이다. 앵벌이를 위해 생체 실험 당하듯 해부되어 아예 실험실에서 배양된다. 자기 복제로 똑같은 형제가 헤아릴 수도 없이 탄생했으니 누가 참 나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잘나면 토막 내서 나눠지고, 못났다는 이유로 도태되어 사라져 버린 일족도 부지기수다. 자기네들의 취향을 위하여 나 스스로 후대를 이을 길마저 막아 버리는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이제 우리는 수족관의 돌고래와 온실 속의 난초와, 곡예단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 신세가 되어 버렸다. 자아와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시장통 판매대의 상품으로 나앉아 있게 된 것이다.

하 많은 푸념을 널어놓았지만,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명분’이라는 것이 내게 들러붙은 탓이다. 명분이 무엇인가. ‘각각의 이름이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말이다. 신분이나 도리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식물인 나에게 무슨 인격이 있으며 도덕이 있다고 유생들이 내세우는 이상향을 뒤집어씌워 놓는다는 말인가. 내가 무슨 공맹을 안다고 충절과 기개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입신양명을 그리도 원하는 당신들이나 붓끝에다 힘주며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선비도 없고 군신도 없는 세상이니 이제 그만 나를 잊어 주면 어떨까. 그대들이 걸어놓은 상징성이라는 목걸이의 무게 때문에 나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꽃, 계절에 발맞추며 나의 자유 의지대로 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에게 국화라고 부르며 헛된 의미를 덧씌우지 말라. 무욕에 유욕을 덧칠하지 말라. 내 삶에 당신의 뜻을 강요하지 말라. 자신의 바람을 타자를 통한 대리만족으로 채우려 하지 말라. 나는 오로지 생존에의 필요로 서리를 뒤집어쓴 것이지, 고절을 위한 오연함이 아니다. 사람들이 국화라고 이름 붙여 주기 훨씬 이전에도 나는 이 계절을 지키고 있었다. 윤리와 도덕을 입에 올리기 한참 전부터 나는 시린 바람맞을지언정 이미 행복했었다.

그대, 정녕 실현하고 싶은 이상이 있다면 자기의 몸으로 직접 도달해 보라. 모든 생명이 한가지 이치에서 나왔음을 그대는 기억하라. 의미나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만물이 제물齊物’이라는 말로 그대의 가슴을 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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