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자 줄임말 전성시대 / 곽흥렬
우리는 사람 이름을 대다수 성까지 합쳐서 석 자로 짓는다. 두 자나 넉 자 혹은 그 이상으로 이루어진 이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쌀에 뉘처럼 귀하다.
예전에는 두 자 이름도 꽤나 흔했다. 족보 첩 같은 것을 뒤적여 보면 전체 이름 중 어림잡아 삼분지 일 내지 사분지 일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세상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은 시절이어서 그랬던가 보다.
지금은 석 자가 대세다. 이는 '석자 선호 사상'의 결과이거나 혹은 석 자로 된 이름이 가장 부르기가 쉽고 느낌상 솥발처럼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같은 이름을 피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석 자 정도의 글자 수로는 어차피 동일한 이름은 피하지 못할 상황이고 보면, 이런 이유를 근거로 들어댈 수는 없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름을 석 자로 짓다 보니 그 영향을 받은 것인가. 줄임말 또한 거게가 석 자다. 이를테면 전교조, 한기총, 자한당……. 이런 식의 조어법이 유행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자유한국당'을 본딧말로 가진 단어가 아닌가.
예부터 우리는 3이라는 숫자를 특히 좋아한 민족인 것 같다. 사람이 꼭 지켜야 할 도리로 삼강三綱을 중요시했고, 자연을 가까이할 때에도 '세한삼우'라 해서 송, 죽, 매 세가지를 벗으로 삼았다. 씨름을 하더라도 삼세판으로 승부를 겨루었으며 만세를 불러도 꼭 삼창을 했다. 의사봉을 두드려도 세 번을 치는가 하면, 제사상에 잔을 드릴 때도 반드시 석 잔을 올린다.
술자리가 열릴 때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건배사 역시 상당수가 석 자로 되어 있다.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고"라는 뚯을 지닌 '빠삐따'.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라는 '당나귀', "변함없는 사랑으로 또다시 만나자"는 변사또, "지금부터 화목한 자리를 이하여"라는 '지화자'등 단숨에 꼽아도 머릿속을 가득 채울 만큼 흔하다.
석 자 줄임말이 자꾸 만들어지다 보니 지금은 별의별 신조어가 다 등장했다.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지잡대'(지방 잡다한 대학),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런 예들은 이미 고전에 속한다. '누물보'니 '별다줄'이니 '세젤예' 등등. 특정 부류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예 이해 불가한 줄임말까지 횡행하는 형국이다. 이따금씩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희한한 신조어들을 만날 때면 마치 외계어를 대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젊은 사람에게서 특히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 재생산 됨으로써 이제는 거의 자기들끼리에서만 통하는 은어 수준으로까지 변질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 취급을 받기 일쑤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싶다.
줄임말이 성행하는 까닭은 우리의 독특한,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가 언어생활에 반영되어 나타난 현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말을 줄여 쓰는 것은 언어 소통의 효율성 제고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과유불급이 절대 진리이듯, 줄임말도 정도껏 사용해야 바람직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지나치게 줄임말이 성행하다 보니 오히려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한 줄임말을 사용하면 상대방에게 점잖지 못하고 버릇이 없어 무례하다는 느낌을 주게도 된다. "솔직히 까발려서 말하면"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솔까말',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벌구', 이런 말들을 과연 아름답고 예의 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나친 줄임말로 인해 고유 언어가 왜곡되고 표준말의 표기조차 서툴러진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석 자든 두 자든 한 자든 글자 수야 어찌 되었건 간에 이렇게 줄임말 너무 좋아해서 계속 줄이고 줄이고 하다가 끝내는 우리 언어 자체가 아예 없어져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제 앞가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주제이면서 오지랖 넓게도 공연히 해보는 기우杞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