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시(直視)와 암색(暗索) / 지연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일반주택도 아니고 아파트도 아니다. 아래층에 점포 하나가 있는 까닭에 상가주택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이곳 상가주택 3층에서 생활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층계를 오르고 내린다. 근 10년 가까이 훈련되어선지 3층 계단 정도는 평지와 다름없는 안목으로 적응하는 편이다. 오늘도 간편한 외출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아 놓고 웬일일까 눈을 감았다. 첫 번째의 계단 앞에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리고 계단 밑으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어둠의 세계가 눈 속에 펼쳐졌다. 칠흑의 장막이 곧바로 다가왔다. 자신 있게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몸의 중심을 계단 옆 손잡이에 의지하고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2층이며 1층 가까이 접근했으리라는 예측 이외의 사물의 거리 측정이 정확히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의 기억을 일깨워 감각만으로 계속 층계를 내려가 보았다. 평상시 유연하게 뛰어오르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하던 층계는 계단의 수를 셈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2층의 계단 어느 한 지점에 서서, 1층의 계단 어느 한 지점에 서서 현재의 위치를 재확인하고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어떤 예리한 감각도 물체의 성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공간과 공간 사이의 거리 측정도 정확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부터는 딴 세상이었다. 명확히 감을 잡기 어려웠다. 머릿속에서는 이쯤인가 싶은데 아직 미치지 못하고, 더 내려가야지 싶으면 벌써 목적한 지점에 닿아서 오른쪽 발을 들고 헛발질을 하게 된다. 계단 아랫부분쯤에서 발밑에 밟히는 물체가 있어서 눈을 뜨지 않고 손으로 그것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한참을 손가락 끝에 대고 감지해 보았다. 10센티미터가량의 높이 끝에 뚜껑이 붙어 있고 지름이 3센티미터쯤 됨직한 원통형의 비닐 병 모양이었다. 무엇인가 내용물이 담겨진 듯싶어 물체를 흔들어 보았더니 걸쭉한 액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자신 있게 그 내용 액이 무엇인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막연히 이것일까 저것일까 예측하기만 할 뿐 단정 지어 지질 않았다. 눈을 뜨고 물질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순간순간 솟아났다. 끝내 시원스레 가늠하지 못하는 예측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눈을 뜨고서야 물체의 진실한 모습을 확인했다. 어떤 사물이 눈에 보여 질 때와 눈에 보여지지 않을 때의 변화는 매우 다양하다. 사물이 눈에 보일 때는 보이는 그대로의 형상을 감각해 내고 나아가 그 형상 속의 본성이랄 수 있는 진실 된 내면까지도 꿰뚫는 심안을 발휘하게 되지만,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어설픈 감각을 앞세워 실체를 이리저리 가늠하다가 사물의 성질을 통찰하지 못하고 물체의 근본까지 오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세상에 펼쳐진, 겉으로 드러난 모든 사물은 시각자로 하여금 보여지는 그대로 감각되어지지만 그 감각의 판단 기준은 바라보는 이의 사고 판단과 지식수준과 경험에 따라 조금씩 각도를 달리한다는 사실이다. 사물을 직시하려는 사물에 대한 비평의 시각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동그란 물체 하나가 사실 그대로 동그랗게 직감되어 나타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삼각형 사각형으로 모양이 둔갑되어 시야에 닿게 된다. 그 같은 오인의 원인은 사물에 보내는 비도덕적이거나 비양심적인 안목을 포함한 사실의 진실성을 저해하는 은밀한 암시가 시야를 가리는 탓이다. 사물은 명료하게 표면에 드러난 물체일지라도 내면까지 꿰뚫는 명쾌한 안목이 포함되고서야 올바른 판단을 제시할 수가 있다.

어둠 속에서는 평상시 잘 아는 길도 갈팡질팡 확실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한 줌의 어둠 속으로 그 광활한 높이와 깊이와 넓이까지 감추며 두 개의 눈동자 속 시력 안으로 침전하며 빠져들고 있다. 어느 하나의 직시도 허용되지 않는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예감과 예시의 눈으로 어렴풋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 것에서나 자신감을 세우지 못하고 끊임없는 탐색의 세계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은 함부로 진위를 가리지 못한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비로소 자신의 안목에 비추어진 크기 일지라도 사물을 직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눈에 비추어진 작은 돌멩이 하나도 단숨에 보여지는 부분과 단숨에 보여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람의 눈으로 명확하고 올바르게 직시하였다 자신할 수 있는 사물은 얼마나 될까. 하나의 태양에서 비추어내는 햇살도 동녘 하늘에 떠오른 일출과 중천에 떠 있는 정오의 태양이 그 빛을 달리하고 서녘 하늘의 일몰의 빛이 밝기가 다르다.

마음속의 생각을 겉으로 다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의 진실은 쉽게 보여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쉽게 예측하여 단정 짓기 어렵다. 가끔씩 사물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세심한 안목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감추어 버리는 향기로운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눈을 떴을 때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고, 눈을 감았을 때도 보이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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