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성민희의 이번 수필집에서는 나이 듦이나 늙음, 병이나 죽음 등에서 파장되는 이야기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디아스포라의 삶과 시선이 가장 큰 묶음의 주제였다면, 아마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한 내면적 성찰과 사유가 그 두 번째 주제일 것이다. 작가의 나이 60대 후반에 이른 만큼 늙음과 죽음의 문제가 가까워지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글쓰기에 깊이 자리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같은 주제의 작품이 어쩌면 그의 수필의 핵심일 수도 있다. 수필의 본질적 측면인 내면적 사유와 성찰을 폭넓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통찰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작가의 성숙함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 색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의 수필이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긴장감 넘치고 뜨거운 이슈도 그의 수필 안에 들어오면 평온과 차분함을 얻는다. 자유, 겸허와 중용, 배려와 사랑, 긍정적 수용 등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성숙과 긍정’이란 그만의 강한 아우라기 여기서 발산된다.
[출판사 리뷰]
성민희는 미국 이민자다. 엘에이에서 미국 시민으로 40년이나 살았다. 산다는 것은 ‘먹고 사는’ 실존의 문제다. 실존은 주어진 조건, 즉 문화에 적응하는 치열한 현실과 대면이다. 여기에 언어는 필수 요소다. 작가의 이민자 생활은 영어에 익숙해지는 숱한 사연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영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생존의 한 방편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모국어는 자연적으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성민희는 모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 고갱이라 할 수 있는 문학에 다가갔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더러 이민자 작가의 모국어 문학 참여가 향수라는 정념이나 스노비즘에 머물고 마는 경우를 목격한다. 하지만 성민희 수필은 다르다. 그는 한국의 수필가 이상으로 한국어 사용과 그 문장 수사가 뛰어나다. 고유어, 고급 한자어, 고사성어를 문맥에 적절하게 배치하여 문장의 품격을 한층 높인다. 그가 오랫동안 미국 이민자로 생활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들 정도로 한국어 구사가 능란하다. 이는 개인적 감수성이나 기질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그의 남다른 의식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민희 수필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제 몫을 다했다고 하겠다.언어와 문화는 그 민족의 정신과 가치를 증류한 것이다. 디아스포라로서 성민희의 글쓰기가 더욱 빛나는 대목이다.
[책 속으로]
우리는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그때 만난 그 사람 앞에서는 이민 초년생이 된다. 걸치고 있는장식을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서로 껴안는다. 옮겨진삶의 뿌리를 조심조심 내리고 가꾸고 싹을 피우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두고 온 고국을 도와줄 만큼 성숙했다.--- p.27
진정한 사랑은 책임과 의무가 바탕이 된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는 실천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인내로 견뎌야 하는 중노동이다.인간에게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한다. 내가 존재하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사랑하라는 이야기다.--- p.48
과거의 어떤 일은 그때 그 시간에 그렇게 발생해야 했고 그때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내 운명이었다는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일이다. 그것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를 거부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고 충족히 사는 것이야말로 내 존재에 대한 경외심이다.--- p.57
반성, 참 좋은 단어다. 반성은 마음을 더럽히는 오물을 모두 부어내 버리고 그 안에 신성한 기운을 담는 작업이다. 내 안에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고 잠시 비틀거리며 벗어나려던 ‘사람의 길’에 들어서는 작업이다. 마음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맵시를 다잡는 작업이다.--- p.74
부부가 살아온 삶도 늙는 걸까. 감은 늙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가 되고 석류는 늙으면 찬란한 보석을 터뜨리는데. 이제야말로 부부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할 때가 아닐까.--- p.110
우리 몸은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이 완벽한 대칭이다. 두 팔과 다리가 같은 무게로 몸에 붙어있기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걷고 뛰고 앉을 수 있다. 팔 하나 혹은 다리 한쪽만 없어도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을 텐데 몸 크기만 한 날개 한 짝이 없는 천사가 어찌 자기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더구나 날아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날아간다. 마치 한몸인 듯 옷을 펄럭이며 가는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다.--- p.128
누가 뭐라고 해도한국 사람을 진정으로 도와줄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우리 2세의 주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만큼 더 많은 한인이 정계로 나가서 소수민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인 사회가 똘똘 뭉쳐서 한인 시의원은 물론 연방 상하원의원까지 배출하는 커뮤니티를 만든다면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에게 얼마나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인가. 경제적, 사회적, 예술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힘이야말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p.159
이제 코리아타운은 한국 고유의 정서와문화가 형성되어 한인에게는 미국에서 한국을 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고, 타 인종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엘에이의 명소가 되었다.--- p.189
우리는 흔히 상대방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자존심이 상했다느니 자존심을 다쳤다느니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정精도 아무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인간관계는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p.231
세계의 모든 젊은이가 한국말로 떼창을 하며 열광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그들을 하나가 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단순히 춤과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지구촌 청춘은 모두 공통된 화두를 나누고 그것을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가 주는 정서는 인종을 따지며 나라를 들먹이는 수준이 아니다. 세계는 물리적 거리나 장소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 p.241
[목차]
【책머리에】
1부 미주 작가의 사명
우리의 음식 문화,
이제는 돌아볼 때
미주 작가의 사명
재미在美 수필가는 ‘재미fun’ 있다고
21엘에이 올림픽 라이온스
세계가 주목하는 ‘한글’
4년 회장 임기를 마치면서
미술품 경매장을 다녀와서
노세쿠, 라세쿠, 드디어는 헤이마
사랑, 그 무자비한 노동을
2부 떠난 사람 남은 사람
건망증 뒤에 찾아온 성숙한 느낌
까르페 디엠Carpe diem
내 영혼의 풍수 인테리어
내가 만일 남자라면
떠난 사람, 남은 사람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하늘의 별과 도덕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복지복福持福대로
3부 향기로운 인연
거꾸로 가는 어머니의 세상
그대, 용감한 청년으로 있어
주오근검화순勤儉和順 친구야 91
조카의 눈물
향기로운 인연
엄마, 제발 집에만 계세요
아직도 뒤척이는 사랑
부부, 늙어감에 대하여
크리스마스 선물 ‘시바스 리걸’
아이의 마음은 강물이 아니다
4부 사랑하는 사람의 무게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의 변이
7월, 그 여름
두 천사의 비상
공항 이별의 그날, 40년 전
길고도 외로웠던 그해 여름
낙동강이 싣고 간 것은
‘쪼이나 쪼이나’ 영옥이 언니
아이들이 사라진 추수감사절 만찬
도우미 아가씨와 I Message
사랑하는 사람의 무게
5부 우리가 지켜야 할 코리아타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 후보다‘
닥터 버크’가 떠나지 않는 이유‘
스키드 로우’ 노숙자 인생 역전을 꿈꾸다
거꾸로 가는 미국의 이민 정책
멕시코 깜뽀 의료 선교를 다녀와서
우리가 지켜야 할 코리아타운
엘에이에 부는 ‘코비드19’ 열풍
미국 사람의 톨레랑스
부모여, 꿈을 깨자
베이비부머 세대의 반란 ‘YOLO’ 라이프
6부 진정한 자존심
산불이 남긴, 사람 사는 이야기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그대 있음에
내 마음의 완충지대 ‘쿠션’
쿠바의 혁명 세대와 신세대
진정한 자존심
인공지능 AI도 이건 못 할걸
이제 아이들의 무대는 세계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
어퍼머티브 액션과 역차별
【해설】 디아스포라의 수필 쓰기, 그 품격과 아우라/ 신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