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자고 글쓰기 허창옥

을 제목으로 하는 다섯 번째 글을 쓸 요량이었다소재로 앤터니 귄 주연의 영화 과 황석영의 소설 삼포로 가는 길」 을 선택했다글을 쓰기 전에 영화를 다시 보았고 소설도 한 번 더 읽었다단맛이 나도록 소재들을 오래 씹으면서 기다리는 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구성이 되었고 글이 나아갈 바도 정해졌다.

서재의 앞뒷문을 열어놓고 써내려가기 시작한다뺨에 와 닿는 바람이 선선하다새들이 재재거리는 소리아이들 왁자지껄 뛰노는 소리신천고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소리들이 창을 넘어 들려온다오수에 빠진 남편의 코고는 소리도 바람 따라 넘어온다그는 코를 골면서 자신의 존재를 시시각각 내게 알리고 있고나는 문자판 두들기는 소리로 스스로를 중명하고 있다한 단락 두 단락 글줄이 이어진다그런데 어느 대목에서 더 나아가지를 않는다서두부터 되읽고 되읽다가 지리멸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덮어버린다.

일어났다 앉았다일어났다 앉았다예서 말 수는 없다앉아있기 위해서는 다른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죽자고 글쓰기는 어떤가이 명제도 다섯 가지 버킷리스트 중에 있는 것이다내가 무슨 끝이 뻔히 보이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닌데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이다분명 분수를 넘는 명제들이지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란 대게 욕심은 넘치고 현실감은 부족하게 마련이다. ‘죽자고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가죽자 사자 매달리는 것인가정말 쓰다가 죽는 것인가모르겠다모르는 채로 써도 그만일 터.

아침부터 궁구한 연작수필 을 실패해서 죽자고 글쓰기를 붙잡은 것이지만 영 갑작스런 일은 아니다맴돌고 있던 것차곡차곡 쟁여져 있던 것이었다다만 오늘 쓸 생각은 아니었다하여 어떻게 끌고 가야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깊은 천착이 결여되었다고 해야 맞다그런 채로 글을 쓰는 것은 무모한 일일 터이나 열망에 들떠서 매달려보는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상(李箱)의 종생기 終生記」 같은 절체절명의 글을 쓰고 싶다그렇다면 실제로 목숨을 다해 써야하는데 솔직히 그럴 용기도 재주도 없다도박 빚에 쫓겨서 원고료부터 당겨 받고는 마감에 쫓겨 미친 듯이 글을 써댔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대문호나 자신이 정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글만 썼던 발자크를 떠올리는 것은 매우 죄송하고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 생각나는 것도 민망하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죽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썼다물론 박경리선생도 그러하셨다그분들은 죽을 만큼 썼다그렇다고 언감생심 그분들처럼 죽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세상에는 죽자고 글을 쓴 사람들이 많았고나는 다만 그분들이 부럽다는 말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자못 진지하다어제 오늘 내리 문자판을 두드리고 있다무조건 써내려가고 있다어제도 실패했고 오늘도 덮어버렸다왜 이러는 것일까잘 쓰려고 너무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다천착이 부족했고 그래서 글감이 육화되지 못한 까닭도 있다괜찮다다시 시작하면 되니까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으니까.

오후 두 시다커피 한 잔만을 놓고 마셨다 놓았다하며 온종일 글만 쓰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가 않는다글을 쓰고 또 쓰고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해가 저무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몰입해서 눈이 퀭해지며 머리카락을 집어 뜯은 나머지 머리가 산발이 되어도 내 모습이 어떤지 몰라야하는데문장이 긴지 짧은지 비문인지 아닌지도 몰라야하는데 나는 벌써 이 문장이 너무 길어졌다고 생각하면서 쓰고 있다. ‘죽자고’ 라니어림없는 소리다.

이 글은 죽자고 글쓰기’ 를 제목으로 하는 한 편의 수필일 뿐이다정작 내게 절실한 것은 죽도록 글을 쓰는 행위이며삶에서 그 행위가 차지하는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하여 이 명제는 고스란히 넘어서 두고두고 나를 죽도록 괴롭히는 동시에 펄펄 살아있게 할 터이다.

배가 고프다라면을 끓여야겠다먹어야하고 잠자야하고그 온갖 해야 하는 일 탓에 글쓰기는 자꾸 미루어진다하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을 테다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죽자고 글을 쓸 생각이다그러하다보면 언젠가 종생에 이를 것이려니그 결과물이 비록 보잘 것 없다할지라도 나는 나대로 죽자고 글을 쓴 것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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