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집 가는 길 / 박진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적당한 단어를 찾아보지만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무엇. 가령 사랑에 대해 아무리 세심하게 설명한들, 죽음에 대해 아무리 빈틈없이 설명한들 그 설명의 총합이 곧 사랑이나 죽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멍이라 해야 하나. 그것에 근접해가는 듯 하지만 언제나 어느 정도 비껴있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그저 침묵해야 하나.
   “냉면.”
   결국 말하고 말았다.
   “냉면…, 어디?”
   남편도 기미를 알아챘는지 말끝이 흐려진다. 무엇 먹고 싶은 것 없냐는 남편의 물음에 마음 언저리에 맴돌던 말이 불쑥 나와 버렸다. 바로 다른 것 먹어도 된다고 고쳐 말했지만 앞서 나왔던 말이 없던 것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다. 말에도 온도가 있어 말해지지 않은 무엇까지 전해지는 것인지 썩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남편은 결국 냉면집에 같이 갔다. 결과는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삼분의 일 가량 먹었을까. 나도 먹는다고 먹었지만 반 정도는 남길 수밖에 없었다. 남은 음식이 아깝기도 했고 시장했을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결과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무안했다. 이럴 줄 알면서 왜 왔을까.


   그녀는 먹는 것을 좋아했고 무엇이든 잘 먹었다. 생선 머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뼈만 뱉어내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기했다. 입에 맞는 음식 뿐 아니라 먹기에 괴로운 것이라도 몸에 좋다는 음식은 참고 잘 먹었다. 병이 깊어 먹기 힘들어졌을 때에도 그녀는 먹어야 산다며 약을 먹듯 때맞춰 억지로라도 먹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고도 한동안은 먹고 싶은 것을 요구하고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때를 거르지 않고 먹었다. 2인실이었는데 옆 침상에 있는 환자는 그녀를 두고 아픈 사람 같지 않다고 신기해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던 그 환자는 물 종류의 음식만 겨우 삼키는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되자 그녀의 의지로도 먹는 것이 안 되는 때가 왔다. 그럴 때도 끝까지 찾았던 음식이 바로 냉면이었다. 6, 7월이니 더운 때이기도 했거니와 자주 속이 답답하다고 했었는데 그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병원 근처에 유명한 평양식 냉면집이 있다. 그녀가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집에 갔다. 점심시간보다 좀 이른 시간에 가서 냉면을 하나 시킨다. 냉면이 나오면 3분의 1은 가지고 간 도시락 통에 덜고 남은 냉면의 3분의 2정도를 먹고 일어섰다. 꼭 그러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늘 그만큼의 양이 남았다.
   먹었던 냉면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을 나와 냉면집으로 가던 길, 넓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 냉면이 나오길 기다리던 때의 느낌이 오히려 생생하다. 덥고 쓸쓸하고 밉고 미안하고……. 아프고 화가 나고 외롭고, 그리고 슬프고……, 그래도 아직은 다행이다 싶은,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 아주 복잡하고 이상했던 기분.
   한번은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여느 날처럼 다녀왔는데 그녀는 한 젓가락도 삼키지 못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조금 이따가 먹겠다고 했지만 냉면은 결국 버려지고 말았다. 그 후로는 물도 삼키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냉면집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물만 겨우 삼키고 있던 옆 침상의 환자보다도 일찍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가끔 냉면집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병원에 있을 때 처럼 혼자 가서 냉면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혼자 갈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결국 냉면을 즐기지 않는 남편을 앞세워 가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절반 이상을 남기고 남편 눈치가 보이는 나는 보란 듯이 먹다가 체하기도 했다. 다시 오자 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냉면이 먹고 싶다. 아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닌데 냉면집에 기어이 가게 된다. 닝닝한 냉면맛 같았던 그녀와 나 사이, 끝내 말하지 못한 무엇 때문일까. 차라리 미운 적이 많았노라고 울어버릴 걸 그랬나. 그만큼 또 많이 그리웠고 그리운 만큼 다시 미워졌노라고 말할 걸 그랬다. 많이 외롭게 해서 미안했다고 차갑게 굴어서 미안했다고 말했어야 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고…….
   내 마음 편하자고 모셔와 놓고 끝내 외롭게 가게 했다, 엄마를.


   가을이다. 유난히도 뜨겁던 날들은 지나가고 언제 올까 싶던 선뜻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느닷없이 냉면집에 가고 싶어진다. 꼭 냉면이 먹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무어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때까지는 그저 냉면이 먹고 싶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겠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다는데 나는 도대체 무박엇 한다고 늦은 밤까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박진희《수필과비평》등단 문학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평론집 《문학과 존재의 지평》, 《서정적 리얼리즘의 시학》, 수필집 《낯선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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