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무신 / 모임득

 

 

 

뒤뜰과 연결된 한지 문을 여니 연초록 감나무 잎사귀가 시야를 산뜻하게 한다. 신발을 신고 내려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잎새 사이로 비치는 햇살 조각이 눈부시도록 정겹다.

모처럼 들른 친정집. 아버지가 생존해 계셨으면 돋아나는 대로 뽑아 내셔서 이렇게 풀밭처럼 되진 않았을 텐데, 앞마당과 뒤뜰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돌 틈으로 돋아난 풀을 조금밖에 뽑지 않았는데 땀이 흐른다. 난 두 손으로 뽑아도 이렇게 힘이 든데, 몸이 불편하시던 아버지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한 채 한 손으로 뽑으셨다. 뽑고 뽑아도 무한정 자라는 이 풀들처럼, 우리 자식들이 서운하고 매정하게 나 몰라라 할 때도 아버지의 사랑은 항상 변함이 없으셨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도 회식 자리까지 끝내고 오빠 집으로 갔었다. 빈혈이나 햇볕을 많이 받아 잠깐 쓰러지는 것만 생각하던 내게 아버지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눈만 깜빡거리며 누워 있으셨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여 어머니의 정성 어린 간호를 받으며 절룩거리시는 몸으로 내려오신 뒤 침을 잘 놓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모시고 다녔다. 쓰러지신 뒤 일 년 뒤에는 말씀은 어눌하게 하시고 오른쪽은 못쓰신 채 모든 일을 왼손으로 하시게 되었다.

시골화장실이 불편하여 신혼시절 우리 집에 머문 적이 있으시다. 생선도 징그럽다며 요리하기를 꺼려하던 나였었다. 중풍에는 개고기가 좋다고 하여 사다가 삶는데 다리가 어찌나 긴지 찜통 바깥으로 자꾸만 나오는 개다리를 돌리고 돌려 삶아 아버지께 드리곤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어쩌다가 들러도 굳어 있는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아 드리지도 않았다.

돌 틈의 풀을 다 뽑고 화단으로 올라서기 전 댓돌 위에 앉아서 잠시 쉰다. 땀을 닦으며 문득 바라본 굴뚝 옆에 지팡이가 서 있고 밑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보인다. 주인 잃은 지팡이와 고무신에는 뽀얗게 먼지가 서려 있다. 칠 년여를 중풍으로 고생하시다가 또 다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다. 유품을 정리할 때 빠뜨린 모양이다.

반쪽을 못 쓰시니 오른발이 무감각인데다가 부었다. 구두는 엄두도 못 내고 운동화를 신으셨는데 신기도 불편하실 뿐더러 하루 종일 걸어 다니시는 터에 고무신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하얀 고무신이었던 것이 때가 잘 탄다는 이유로 청색의 고무신으로 바뀐 뒤 외출하실 때만 하얀 고무신을 신으셨다. 그러니 건강한 몸으로 외출할 때 신으셨던 구두 한 켤레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바깥 구경 할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고무신을 신고 지팡이에 의지하신 채 절룩거리며 아랫마을까지 다녀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그날 저녁 밥상에서는 어머니에게 누구네 벼에는 병이 들어 약을 쳐야 되겠고, 누구네 밭의 고추가 실하게 달려 있고, 사촌 집에 담배 순을 쳐야 되겠다며 어눌하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잘 못 알아들어도 어머니는 알아들으시고 오순도순 말씀을 나누셨다. 부부간의 살가운 정이 새록새록 느껴지던 그 모습이 그리워서 콧등이 시큰거린다.

당신의 평생 생활 터전이었던 논과 밭을 보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로지 자식 잘 가르쳐 보겠다면서 두 손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던 몸 건강하실 때의 모습을 회상하고 계셨던 건 아닌지.

주말을 이용하여 고추를 딸 때면 한 손으로라도 거들던 아버지. 길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줍고 가로등을 시간 맞춰 켜고 끄는 것은 물론 동네 회관이며 우리 집 안방까지 한 손으로 걸레를 든 채 닦고 또 닦으셨다.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면 어머니는 보던 드라마를 계속 보셔도 아버지가 비설거지를 하셨다. 행여 자식들이 온다는 연락이 있으면 방마다 보일러 켜고 끄는 것도 아버지 몫이었으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방에 불 조절을 잘못하여 더운 방은 너무 덥고 다른 방은 냉방에서 떨기까지 했다.

고무신을 가만히 가슴에 안아 본다. 지금이라도 이 고무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은 채 활짝 웃으며 대문을 들어서실 것 같은데, 하회탈 같은 미소는 어디 가고 뒤뜰에 핀 함박꽃만 눈에 들어온다.

뒤뜰의 돌담이 담쟁이 넝쿨로 덮이고 함박꽃이 활짝 필 때면 감나무 옆의 부추는 제법 자라 있었다. 부추를 자르고 애호박을 넣어 부침개를 부쳐 드리면 맛있다는 표시로 웃어 주시며 잡수시곤 하였는데……. 주인 잃은 부추만 한 뼘이나 웃자라 있다.

고무신을 들고 수돗가로 향한다. 대야 속에 잠긴 고무신을 보니 아버지의 발을 씻겨 드릴 때가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동안 힘든 농사일의 훈장이라도 되는 듯 양쪽 발바닥엔 뚝살이 박여 있었다. 힘줄도 보이고 감각이 있는 왼발에 비해 오른발은 약간 휘어진 듯 하면서도 많이 부어 있어서 씻겨 드리기가 힘이 들었었다.

아버지의 발이라도 씻겨 드리는 듯 수세미는 제쳐 두고 손으로 고무신을 정성스럽게 닦는다. 비누칠을 한 다음 여러 번 헹구어 댓돌 위에 세워 놓았다. 어렸을 때 어둑해지면 지게 지고 대문을 들어서던 아버지는 샘물을 퍼 올려 바짓단 걷어 올리고 씻으신 후 검정 고무신에 들어간 물 빠지라고 댓돌 위에 세워 놓곤 하셨는데…….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발에는 고무신이 신겨 있을 때가 많았다. 요즘 흔한 슬리퍼도 일할 때 거추장스러우니까 아예 신지를 못하고 검정 고무신에서 시작하여 청색, 하얀색만 신다가 가시는 저승길에도 하얀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체취가 오롯이 남아있는 고무신을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신발장에 모셔 두었다. 앞으로 친정집에 들를 때마다 아버지를 보듯 꺼내어 닦아 두어야겠다. 고무신을 신고 대문을 들어서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 또한 그리면서…….

아버지의 고무신을 가슴에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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