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그물 / 박종해
풀벌레는 달과 별을 빨아들여
소리의 그물을 짠다
명주실 보다 더 가늘고 연한 소리와 소리의
음계에 달빛과 별빛을 섞는다
나뭇잎마다 포르스름한 별빛과 달의
은빛 입술이 맺혀 있다
풀벌레는 이러할 즈음 잊혀진 그녀의 머리칼
한 올 한 올까지도 소리의 실로 짜 내린다
나를 벼랑으로 떨어뜨리고 가버린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달처럼 떠오른다
잊어버린 시간의 풀섶에서 풀벌레가
잊어버린 말을 명주실처럼 뽑아낸다
아무렇지도 않던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잊어버린 강 언덕 달빛 부서지는 메밀밭 언저리를
찿아가고 있다
어느새, 화안한 달빛 속에서 아련한 여장의 그리메가
나뭇가지와 오솔길과 벤취 위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