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흐르던 푸른 하늘 / 김열규

 동트는 새벽, 그 맑은 하늘에 믿음을 받치며 이 땅의 집안들은 이어져 왔다. 정화수(井華水) 한 그릇 떠놓고 엎디시던 소복(素服)입은 할머니와 어머니는 바로 우리의 할머니였고 어머니였다. 엎디신 허리 펴고 합장하시며, 새벽 하늘빛에 머리 조아리시던 그분들에게서 우리가 배운 것은 삶의 경건함과 엄숙함이요,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살붙이의 따사로운 정이다.

백의(白衣)의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 하늘빛을 우러러 합장하시던 우물 곁, 혹은 뒤란의 한 쪽, 또는 장독대는 지금도, 경건해야 할 삶, 엄숙하고, 아름답고 정겨워야 할 삶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곳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와 틀이 익힌 곳, 너와 나의 마음과 가슴의 고향이다.

우쭐거리거나 오만스럽게 뻣뻣이 굴지 말고, 남을 넘보거나 억압하지 말며, 눈 흘기지 말라는 타이름이 계셨기에, 우리는 늘 사람답게 살자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냐? 사물과 사람을 대하되 매양 다소곳하고, 남을 맞기를 자신을 대하듯 하라시던 그 소리 없는 가르침은 우리 윤리의 바탕이 되어 왔다.

동해를 바라보는 토함산 머리에 좌정하신 석굴암의 본존불은, 새벽하늘을 우러러 합장하시던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이 되어, 높으나 높은 산봉우리 깊은 굴속에 앉으신 모습이다. 석굴암 석존불은 동해바다 하늘빛을 그 이마 한가운데 백호에 담아 무량(無量)광명을 세상에 던졌으니, 동녘 하늘 빛을 받아 비로소 서원(誓願) 다하신 부처님의 모습은 돌로 앉아 있되 오히려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 같은 신 모습이다. 불심(佛心)과 천심(天心)이 어울려 이 겨레다운 신심(信心)을 이루어 앉으신 모습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라 하였듯이, 비록 밤이라 해도 달 밝고 별빛 맑으면 의연히 푸른 하늘, 동천 푸른 하늘에 기구(祈求)를 바쳤듯이, 별빛 치렁치렁, 북두칠성 유난히 빛을 더하는 한밤의 푸른 하늘에도 신심이 바쳐졌다. 북두성(北斗星)은 수요(壽夭) 장단의 별, 우리 목숨의 길고 짧음이, 그 온전하고 부실함이 이 별에 걸려 있었다.

집안에 앓는 사람이 있을라치면, 새벽하늘에 동향(東向)하여 엎드리시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북향하여 밤하늘 그 여린 푸른 기운 밑에 합장 배례하는 것이다. 하얀 대접에 담은 물 한 그릇에 푸른 하늘이 이으면 그만, 흰 빛 치마저고리로 그 앞에 엎디신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물레처럼 잘도 돌아가는 것이었다. 맑은 물 한 그릇 믿고 푸른 하늘 바라보면 마음이 물같이 하늘 같이, 물과도 같고 하늘과도 같은 삶을 누려, 나무에 피는 꽃처럼, 구름을 나는 학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