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말은 마음의 소리다. 진심을 다해 이야기 했을 때, 상대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말은 영혼을 두드리는 문이라고도 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를 봤다. 전통시장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나옥분과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구청 말단 공무원 민재 형제와의 좌충우돌식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그녀와 삶의 애환을 함께 하는 시장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이 훈훈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나옥분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며 왜 영어를 배우려 했는지 이유가 밝혀졌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다. 미국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i Can Speak, 나는 말 할 수 있다. 꼭 하고 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는 할머니는 당당하게 외쳤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의 현재를 조명하고, 전 세계 앞에서 증언한 그녀의 용기에 감동했다.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꼈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에 소재한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동상이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다. 단발머리의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다. 한복 저고리의 옷고름을 단정히 매고 주먹을 꼭 쥐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소녀의 맨발 뒤로 바닥에는 검은색 타일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모양의 그림자가 새겨져 있다. 꿈 많던 소녀에서 짓밟혀진 몸으로 인해 여인의 삶을 강제로 빼앗기고, 이제 나이 들어 어둠속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상징한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세워지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상반된 기사 때문이다. 본국지면에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일본과 충돌 우려가 있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하거나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또 미주판 기사에는 미국의 제9 연방 항소법원이 일본계 극우단체 회원들이 글렌데일시를 상대로 제기한 평화의 소녀상 철거 항소심에 대한 내용이다. 소녀상은 연방 정부의 외교권 침해가 아닌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들어 원심유지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글렌데일 시정부는 매년 7월 30일을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지정했는데, 본국에서는 축소를 하다니 주객이 전도됐다.
그분들은 타국까지 끌려가 말로 표현 못할 고통과 치욕을 당했다. 이제 또 다른 나라에서 이런 황당한 소식에 울분을 터트리지도 못한 채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소녀상의 모습이 가슴을 시리게 했다.
'나라가 약하니 내가 끌려갔지, 또 나라가 그동안 우리를 너무 외면했다'던 할머니의 증언이 귓가에 맴돈다.
공장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서 혹은 강제로 납치 되어 끌려간 소녀들이다. 정상적인 여인의 길을 걷지 못한 한이 깊은 상처로 남아 아직도 그분들은 괴롭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필요악이었다는 발언 등으로 전쟁기간 동안의 성노예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곱디고운 청춘을 강제로 짓밟히고, 해방 이후 살아서 조국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보다 더럽혀진 여자라는 굴레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죄 없는 죄인으로 숨어 살았다.이제 연세가 많아 생존자가 줄어드는데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진심이 담신 사과를 받으셔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 속 옥분 할머니가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숨어 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말로 풀어냈다.
“죽을 때까지 꼭꼭 숨기고 살라했는데, 이제 그 약속 못 지켜. 아니 안 지킬라고. (중략) 엄마,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망신스러워 했어. 내 부모 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하게 살수가 있겠어?”
이 대사에 나는 엉엉 울었다. 위로를 받아도 부족한데.
십여 년 전, 남편은 USC대학에서 열린 환경문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일본인 연사는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무수한 인명이 죽음을 당하고,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진다며 미국은 일본에 사과하고 피해보상을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객석에서 한국여성이 손을 들고 일어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당신들은 한국국민에게 핵폭탄보다 더한 피해를 입혔다. 귀한 문화재를 훔쳐가고 파괴했으며 성을 바뀌고 글을 말살했다. 특히 제 2차 대전 당시 순결한 젊은 여성을 취직시켜준다거나 납치를 해서 강제로 일본 군인들의 성 욕구를 채우는 위안부로 만들지 않았는가. 당신들은 그 문제에 대해 사과를 했는가.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녀의 말이 끝나자 강단 안에는 박수가 쏟아지고 일본인 연사는 말을 얼버무리며 급히 자리를 떠났단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인 남편은 가끔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며 시간이 흐르면 잊히게 마련이니 위안부Comfort Women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다.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영화를 보고 나도 이번 용기를 내려 한다. 소녀에서 여성을 잃어버리고 할머니가 된 분들의 삶을 글로 써야겠다. 그 끔직한 일을 겪을 때는 소녀였기에 위안부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맞다.
할머니가 말했다. “i Can Speak.” 듣고 싶은 말은 “I am sorry”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글렌데일 소녀상의 얼굴에 낙서를하고
소녀상 주변 화분을 쓰러트린 여인이 체포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속상했는데 다행이다.
이제 '평화의 소녀상'이
평화로웠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