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연습, 사는 연습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똑같은 모양의 빛이지만 우리 눈엔 매일 아침 뜨는 태양이 항상 새것처럼 보인다. 매년 1월 1일 새벽에는 공원에 모여 첫 미사를 드린다. 성체를 받아 모실 전례 순서에 이르면 맞은 편 산등성이가 환히 밝아온다. 저 빛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어떤 색깔로 스며드는 것일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시간 속에서 거듭되는 새해의 첫 태양은 어제와 다른,  오늘 하루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이다.

며칠을 감기로 고생을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아 목이 부어오르고 콧물은 쉬지 않고 흘러내려 휴지를 아예 대고 있어야 했다. 먹성 좋은 내가 식욕이 잃다니 정말 세상 살맛이 나질 않는다. 이번에 유행하는 감기로 벌써 사망한 이들이 이십여 명이 넘는다 한다. 면역력이 낮은 노약자들에게 정말 감기는 치명적인가 보다. 나도 병을 이기기에 젊지 않은 나이임을 아이들의 근심스런 눈빛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 한 젊은이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묵은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그리움을 남긴 채 홀로 갔다. 2년이 넘도록 희귀한 병을 앓으며 죽음과 싸워왔다. 날마다 대하는 죽음에 관한 신문기사가 변해가는 세상을 보도하며 채우는 분량보다  적지 않다. 수많은 사건 뒤에는 희생자가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존재는 그처럼 무거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가 감기를 앓고 있던 그 시간도 죽음의 연습 기간은 아니었을까. 다행히도 약과 휴식을 통해 회복하여 오늘을 숨 쉬고 있다.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가. 잠자리에 들면서 스스로 묻곤 한다. 병고 속에서 목숨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오늘이다. 잠시 감기로 불편했던 며칠의 괴로움은 어느새 잊은 채 생각 없이 또 하루를 흘려버리는가 보다. 내 손이 필요한 곳, 내가 움직여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은데 마냥 게으름만 피우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처럼 혼자인 친구에게 전화했다. 어려움이 많지만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한다. 마음은 평화롭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 애와는 자주 얘기를 나눈다. 날마다 살아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는 말이다. 죽는 연습이 되풀이되는 하루를 사는 연습으로 마무리한다.

' 자살'을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보았다. 유가족들의 증언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찾아본다. 하나같이 성실하고 좋은 이웃이었던 사람들이다. 가족에게도 더없이 따뜻하고 사랑받는 이들이었다. 겉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감추어진 외로움과 책임감이 드러나면서 유가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들은 세상을 살아내는 일에 서툴렀던 듯했다. 사는데에도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잘 죽기 위해서 더욱 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새해의 시작에서 듣게 된 한 젊은이의 죽음과 죽을 만큼 괴로웠던 감기몸살이 나를 철 들게 한다. 우물쭈물 적당한 삶의 태도는 안된다고 일깨운다. 거룩하고 희생적인 본보기가 못 될지언정 계획표를 잘 만들어야겠다. 오늘을 사는 연습에 충실할 때 삶의 마감도 아름다울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에 나왔으니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통해 삶을 채워야 할 터이다. 새 마음으로 오늘을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