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의 강물
아름답게 늙고 싶다. 일찌기 엄마는 쉰넷의 생애로 삶을 마감했으니 그에 비하면 난 훨씬 긴 시간을 사는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오래 산다는 것을 축복이라 여기지 않았다. 적당한 중년 나이의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풍기는 사람을 보면 한없이 부러웠다. 흑백영화 속에서 다리를 꼰 채 담배 연기를 내뿜는 여자 주인공의 눈빛에 매료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마흔 쯤에 이르면 담배를 배워보리라 마음먹기도 했었다. 지금처럼 애연가들이 푸대접을 받는 시절이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여자로 태어나 나이를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딸 노릇으로 부모님께 기쁨을 드린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아내라는 자리로 이동한 세월이 훨씬 길게 지나갔지만 역시 후회되는 일이 앞선다. 엄마가 되어서는 그 몫을 훌륭히 했는가, 스스로 부족함과 성급함 때문에 그르친 일도 많았다.
중년 시절은 벌써 지나가 버렸다.
아내로, 엄마로, 시집간 딸로... 어찌 그 많은 세월이 흘러갔을까. 어쩜 가버린 것이 아니라 뒤로 가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둘러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스로 훌쩍 떠나온 기억도 내겐 없다.
지나온 그 길에 이젠 나를 대신한 젊음이 자리하여 희망찬 생동감으로 빛나고 있다.
나는 홀로 버둥거리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리에 초대받은 귀한 관객이 되어있다.
무대 위엔 잘 익은 풍성한 열매들이 설레는 모습으로 기진한 치마폭에 안겨든다.
에둘러올 길이 없어 그냥 앞만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오지 않았나. 저만치 쏟아지는 비를 먼저 뛰어가 맞으며 온몸으로 그들을 지켜왔다.
이제는 우주를 모두 품은 것 같은 가득함이다. 내 곁에 서성이던 미망의 파편들은 바람에 실려 무지개가 되었을까.
게으른 노년은 생각하기도 싫다.
지금 시대엔 나이의 개념이 희박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할머니의 모습을 상기하면 요즈음 마주치는 노인들의 삶은 가히 역동적이다. 간혹 레스토랑이나 국립공원 등지에서 경로우대로 할인요금을 적용받을 때가 아니면 그 누구도 스스로가 노년층이라 의식하지 않으리라.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 부드러움과 안정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이제야말로 그동안 갖지 못했던 나만의 세계, 배움의 설렘에 정열을 쏟을 때다.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젊은 시절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골프에도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생기면 먼 길도 주저않고 달려간다.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한 친구들의 만남이라면 더 이상의 위급상황은 없다.
새 소망을 짓는다.
지구 종말이 내일일지라도 누구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를 얽어매었던 세상의 것을 놓아주려 한다. 그로 인해 더는 나를 아프게 하진 않으련다. 집착과 기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희망의 강을 흐르게 한다. 느리게 흐르는 강물의 여유로움을 닮고싶다 . 거센 물살을 막아내는 돌들이 깊은 강바닥을 굳게 지키고 있기에 오늘도 평화의 강물은 내 마음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