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젠 더는 화가 나질 않는다.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그 한 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어야 했던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모르는 일에 관련되어 억울한 소문에 똑같이 휘말리는 상황에서는 정말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교회 안에서, 사회활동의 단체 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가지 일을 경험했다.
지난봄, 멕시코의 과따루뻬 성지를 다녀왔다. 성모님의 발현지로 알려져 많은 신자들의 순례가 이어지는 곳이다. 매일 미사를 드렸다. 어느 아침 그날의 성서 말씀이 '용서'에 관한 내용이라서 신부님께서는 아직 마음속에 화가 풀리지 않은 대상이 있는지를 묵상하게 하셨다. 꽤 오랜 시간을 침묵 속에 있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함께 있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봐도 밉게 보이는 이가 없다. 전에는 여행지에서 같은 그룹 중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못마땅하여 화가 나곤 했다.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했던 미움이 있었다. 나를 세상에 내신 아버지, 그를 마음에서 놓지 못해 괴로워했다. 세상을 떠나신 지 15년이 지났지만 살아계신 동안 용서를 빌지 못한 아픔이 나를 힘들게 한다.
엄마와 사별 후 아버지는 아주 젊은 여자와 재혼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는데.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막내딸을 내칠 만큼 모진 성격을 지닌 분이 못되었다. 최소한 엄마가 병환 중에 있을 때 곁에서 온 힘으로 간호하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상식을 벗어난 일은 오래 가지 못하듯 아버지의 새 삶은 상처만 남기고 짧게 끝이 났다. 돌아온 것은 짐뿐이었다. 재산도, 몸도, 다 망가진 아버지를 25년 동안 함께 살아야 했던 내게 그보다 더한 십자가는 없었으리.
남편은 나의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 결혼했고 그는 약속대로 장인을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속죄라도 하듯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더욱 큰 도움을 주시려 늘 노력하셨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한 번도 남의 손에 맡겨진 일이 없었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따뜻한 아이들로 자라났다. 지금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뿐만 아니라 존댓말 사용도 정확하다. 그런 중에도 나는 끝없이 아버지를 경멸했고 이중적인 인격이라 몰아붙였다. 진심으로 섬기지 않았고 때론 무시하기까지 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아픔을 삭이지 못하고 아버지를 차갑게 대하곤 했다.
얼마나 모질고 아픈 시간이었나. 고난이라 생각했던 많은 일이 은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말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아버지로 인해 내가 받은 고통보다는 축복이 훨씬 컸음을 이제야 절실하게 깨닫는다. 어리석음을 애통해해도 아버지는 내 곁에 계시지 않으니 손잡고 사과의 말씀을 드릴 길이 없다.
살아보니 별것 아닌 것에 예민했다. 있을 수 있는 일,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될 것을 양보하지 못했고 받아들일 수 없었음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조차도 지금의 나이가 되었기에 할 수 있으리라. 짧게 스쳐 간 미움과 원망의 대상들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이 순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음을 감사한다. 내 생애의 끝날까지 무거운 마음을 지니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에. 아버지,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