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꽃이 피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 역시 무언가 거저로 얻을 수 있다면 웬만한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경제원리가 아닌가.
뉴욕에서 시작된 미국생활은 낯선 것 투성이였다. 애당초 상사 주재원으로 와서 3년 근무를 마치면 귀국할 예정이었기에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하기가 부담이었다. 두 아이 양육에 필요한 것 말고는 불편해도 참기로 했다. 남편은 맨해튼 사무실로 출근하고 큰 아이를 네 블록 떨어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면 백일잡이 둘째 아이를 데리고 훌러싱 동네를 걸었다. 이탈리아제 명품 유모차에서 아기는 너무도 평화로웠다.
나보다 석 달 먼저 미국으로 온 남편은 작은 아이를 위해 몇몇 육아용품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는 일본 주재원이 많았는데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귀국할 때에는 '재패니즈 클럽'에 모든 살림을 맡겨 중고물품으로 처분한다. 남편은 퇴근길에 그곳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 놓았다. 명품 유모차도 그중의 하나였다. 후에 가재도구들과 고급 자동차도 여기서 샀다. 우리 집에 새 것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두 번 째 주인(SECOND HANDED)이 되었다.
공짜물건도 많았다. 미국 동네 구경도 하고 길 이름이라도 익힐 요량으로 걷다 보면 뜻밖의 보물을 만나곤 했다. 특히 아파트 지역을 벗어나 고급 주택이 즐비한 거리에는 집 앞 수북이 쌓여있는 물건 속에 귀한 것들도 끼어 있었다. 처음엔 창피한 생각과 구지레한 마음이 들어 들쳐보고 싶어도 참고 지났다. 가난해도 체면 때문에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없는 한국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솔직히 중고 살림으로 가득한 생활공간이 개운치 않은 느낌도 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실속있는 삶이었다.
얼마 전, 여행길에서 얻은 선인장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처음 가는 동네로 들어서는 골목 집 앞에 놓인 박스가 눈에 뜨였다. 'FREE' 라고 쓰인 팻말도 함께 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 속엔 갖가지 선인장 화분이 가득했다. 가시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듯 일제히 직선으로 나를 포인트하고 있었다.
가자, 가자, 우리 집으로.
봄볕이 완연해지면서 꽃들이 피어난다. 연분홍 복숭아꽃, 흰 밥풀같이 다닥다닥한 자두꽃 가지, 그리고 장미도 한창이다. 유난히 따뜻했던 지난 겨울 동안 나무는 서둘러 싹을 틔웠나 보다. 지난해 우리 집으로 시집온 선인장들이 각양각색의 꽃으로 덮혀있다. 겉모양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데 피워내는 꽃은 매우 환상적이다. 온몸을 가시로 무장한 채 그저 바라만 보라며 웃고 있다. 값도 치르지 않고 데려온 그들에게서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을 선사 받는다.
미국인들의 여유를 생각한다. 그들은 지극히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외형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만일 정원에 화초를 심고 남은 것이 있을 때 아무라도 가져다 가꾸라며 내어놓게 될까.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심고야 말았을 것이다. 누군가 값없이 내어놓음으로 다른 이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닐지라도 피어나는 향기로 말미암아 세상이 변한다.
큰 가시를 딛고 활짝 핀 선인장꽃 자태가 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