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 전시장에서

 

 선배의 퀼트 전시장에 갔다. 대학 동창과 함께 보랏빛 난꽃으로 바구니를 만들어 축하 카드를 꽂아 들고 갔다. 전시실에는 정성이 가득 담긴 선배와 제자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우리의 만남은 45년 전 한국의 잠실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그녀가 미국으로 1990년대에 이민해 와서 힘들었던 시절에 퀼트와 인연을 맺고, 바라던 대로 이제는 어엿한 강사가 되어 위티어 아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

 

 퀼트의 어원은 라틴어로 '채워 넣은 물건'이라고 한다. 퀼트는 자투리로 남은 천을 포개어 그 안에 솜을 넣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조각을 이어 나가는 기법이다. 처음 퀼트는 이집트인과 중국인 그리고 튀르키예인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한 방한용품으로 만들었고 15세기 유럽에서는 여인네의 치마 속에 입는 패치 코트에 사용되었다 한다. 17세기 초에는 침대 퀼트 이불이 선보였고 아름다운 디자인보다 단순하고 튼튼한 실용 퀼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시된 퀼트 위 정원에는 한 땀씩 놓아 만들어진 수국, 해바라기, 장미, 벚나무 등의 꽃이 흩날리고 울타리 안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다. 정원 중앙의 나무에는 새와 새집과 앙증맞은 가방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한 땀씩 실과 바늘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꽃이 되기도 하고 구름이 피어나기도 하고 비가 내리치기도 한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작품은 작은 천 조각의 모임으로 조각마다 가지고 있는 색채에 의해 따뜻한 느낌과 찬 느낌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마치 물감으로 점점 흐리게 시작하여 갈수록 점점 진하게 큰 화면 위에 뿌려 놓은 것 같다. 실과 바늘, 색색의 자그마한 천 조각을 이어 색환표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이것을 어떻게 누볐을까?

 

 

 또 다른 코너에 있는 퀼트에는 창문이 보인다. 그 유리 너머로 하얀 식탁 위에 놓인 흐드러진 꽃도 일품이다. 낚싯대를 멘 아이, 담벼락에 빨래를 널고 있는 소녀, 세발자전거를 타는 소녀, 두둥 떠가는 구름을 따라가는 오누이, 커다란 재래 솥을 걸어놓고 요리하는 깜찍한 소녀 등 동화 나라가 펼쳐진 듯하다. 모든 퀼트 속에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품 전시대에 갔더니 꽃으로 누빈 핸드백, 휴대전화, 보석과 도시락 가방 등을 무늬와 색의 조화를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누빈 실용적인 작품이 많았다. 선인장을 만들어 화분에 담아낸 것은 살아 있는 식물처럼 생생해 보였다. 바늘과 실로 누비는 퀼트가 얼마나 활용범위가 넓은지 여기에 모인 작품을 보고 실감이 났다.

 

 

 어머니 생전에 선배가 무릎 덮개를 선물했다. 무릎 위쪽에는 장갑도 만들어져 있었다. 손이 시려울 때는 언제든지 두 손을 납작하게 넣을 수 있어서 어머니는 신문과 성경을 읽으면서 손을 넣고 계셨다. 전시회를 둘러보는 그때는 어머니의 모습과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 교차하여 내 마음이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기도 한 시간이었다.

 

 

 한 조각 한 조각으로 여유를 잇고 한 땀 한 땀으로 행복을 기워 완전한 수제품으로 만든 퀼트 작품을 감상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 미술, 문학이 아닌 또 다른 예술의 세계를 경험했다. 인간의 잠재된 재능은 얼마나 무한한지 실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