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운동장

 

 

이현인

 

 

 

 

  3월이 되면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신입생의 입학식이 있었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새 가방을 메고 신주머니와 실내화를 가지고 오던 시절이다. 꽃피는 3월이라지만 꽃샘추위가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그것은 시련을 극복한 뒤의 성숙함처럼 꽃의 강인함을 키우기 위한 자연 섭리이리라.

 

  74년도에 초임 발령을 받은 학교가 옥수동 산동네에 자리 잡은 옥정 초등학교였다. 한 교실에 70명 가까운 어린이들이 바글 거렸다. 여름에는 선풍기도 없었다.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젖혀진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뿐이어서 시큼한 땀내가 코에 배어 냄새에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어느 해에 교장선생님은 내가 원하지도 않은 1학년을 맡겨 주었다. 꼬마들의 담임으로서 운동장 구령대에 올라가서 율동을 해야 했다. 묵묵히 주어진 일을 차분히 한 가지씩 처리하는 성격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던 나였기에 부담감이 컸다. 아이들만 있다면 서슴없이 율동을 할 용기는 있는데 나의 행동을 일일이 지켜보는 학부모 앞에 서는 것은 왜 그리도 피하고 싶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드디어 구령대에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흰 체육복으로 산뜻하게 갈아입고 구령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잡는 순간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부모들은 그저 말없는 인형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오직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씨앗, 아침 해, 학교 종, 깊고도 넓도다, 태극기, 꽃밭에서 등을 율동으로 꾸며 지도했다. '씨 씨 씨를 뿌리고, 꼭 꼭 물을 주었죠, 하룻밤 이틀 밤 쉿쉿쉬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싹이 났어요.' 손을 모아 둥그런 아침 해를 만들고, 주먹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 윗니와 아랫니를 닦고 깨끗이 세수하고 단정히 머리 빗고 옷 입고 거울 보는 모습과 밥을 꼭꼭 씹어 먹고 가방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율동으로 표현하고 입학생들이 행동으로 실천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했다. 율동이 끝나면 각 반별로 학교 교실 둘러보기, 화장실 사용법 알기, 교통안전등 기본 학교생활 기르기에 초점을 맞추어 지도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학교에 익숙해질 즈음엔 어느덧 봄이 성큼성큼 다가와 학교 내 정원과 학교 주변의 산에서 꽃눈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의 환한 함성과 순박한 웃음이 피어난다. 밝게 미소 짓는 진달래꽃,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꽃, 춤추는 벚꽃, 수줍은 살구꽃, 주위를 밝히는 노란 빛 개나리꽃처럼 저마다 특유의 색깔로 꽃봉오리를 피우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우리 반의 외향적인 아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는 아이, 얌전한 아이, 호기심이 많고 도전성이 강한 아이 등 개개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지금은 쉰이 훌쩍 넘었을 그 시절의 아이들 모습이 내 앞에 내려앉는다.

 

  일학년 꼬마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 위해 새로운 노래와 율동을 시도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던 시절이 정원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 속에서 피어난다. 지나간 내 젊은 날의 3월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