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見物生心)
이현인
지난해 초가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갑자기 에어컨이 굉음을 쏟아내더니 작동을 멈췄다. 코비드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가는 상황이라 수리를 할 때까지 주르륵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도 참아야했다. 에어컨이 없는 시대에는 어찌 이 불가마를 견뎠을까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고대 이집트인은 물에 적신 갈대를 창문에 달아 실내 온도를 낮추고 습도를 높여 간이 냉풍기로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석빙고라는 얼음 보관시설이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더운 공기와 찬 공기의 순환인 대류 현상만을 이용한 것이었다. 시대마다 더위를 피하려고 고심한 흔적을 보며 새삼 에어컨의 출현을 고마워한다.
우리 집에는 노모를 포함하여 재택 근무하는 교사 아들과 손자 손녀 등 여덟 명이 함께 지낸다. 다행히 아래층 에어컨은 작동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이층에서 보내므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각 방을 들여다보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방문을 닫고 비대면 강의를 하는 아들이 안쓰러웠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손자의 구슬땀도 안타까웠다. 선풍기와 탁상형 사각 팬(fan)을 다섯 대나 돌리고 보니 너무 시끄러워 손자는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들을 수 없었다. 수업하던 선생님이 모니터 안에서 "지금 공사 중이니?" 라고 묻기도 했다. 정신을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수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화번호부에서 에어컨 시공회사를 찾았다. 가격이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이틀을 꼬박 일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날에는 안방 옷장 안에 있는 다락방의 난방로를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이십여 년이 된 낡은 것이었다. 나는 묵은 먼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담요로 옷과 물건들을 덮어 놓았다. 벽걸이 나무못에는 신혼여행 때 가지고 다녔던 아련한 추억의 손가방이 걸려 있다. 둘째 날에도 두 명의 기술자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정원에 있는 에어컨 유닛과 찬 공기를 다락방까지 끌어올리는 코일 공사를 했다.
드디어 에어컨 수리가 끝날 무렵 반가운 마음에 옷장에 들어가 보았다. 뭔가 벽이 빈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벽걸이에 걸려있던 작은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끼는 가방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다락방에 있던 한 기술자에게 자주색 가방을 보았느냐고 물으니 오전까지만 해도 보았다고 했다. 바깥에 나가 다른 기술자에게도 물어보니 그는 무슨 뚱단지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군가 가져갔다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 탓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왜 가방이 보이게 두었는지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가방을 챙기지 못한 것이 더 후회스러웠다. 그는 난감해하는 내게 “혹시 아이들이 가져갔는지도 모르잖아요.”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졌다. 이미 없어진 것을 어찌하랴. 포기는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경찰을 불러 그들이 몰고 온 차량 속을 수색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애가 달아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을 본 아들이 아버지께 여쭈어보라고 했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남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져가라고 걸어 놓았나? 그걸 보면 마음이 변할까봐 침대 옆의 서랍장에 숨겨 놓았어.” 상상도 못 했던 말을 했다. 나는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서랍장에 앉아있는 가방을 꺼내어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다시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 가방이 나를 다독거렸다.
공연한 사람을 의심하여 물어보고 상처를 준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오늘 내가 한 행동을 부인하고 싶었다. 신의 창조물은 모두 불완전하다며 나를 달랬다. 이 실수를 어찌해야하나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대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무리 작업을 끝낸 기술자가 차 앞에서 청구서를 기록하고 있었다. 풀죽은 목소리로 가방을 찾았다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다음 날 나는 업종별 인터넷 사이트 주소록에서 그 업체 이름을 찾아 별 다섯 개를 주었다.
남편이 견물생심이란 말을 떠올린 탓에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삶은 경험과 깨달음의 연속이다. 이 경험이 나에게 주는 작은 울림이 큰 메아리가 되어 앞으로는 이런 해프닝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원한다. 언제나 심사숙고하여 행하고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