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한 해를 보내며

이희숙 수필가

이희숙 수필가

감잎이 고운 색으로 물들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황홀한 모습도 잠시인가, 바람이 부니 힘없이 나부낀다. 뒹굴거리며 몸을 뒤척이는 모습에 가슴이 시려온다. 온몸의 진액을 빨아올려 맺었던 열매를 떠나보내고 홀가분한 몸인데 왜 그리움에 떨어야 할까.  
 
아침 식사 도중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딸 친구가 아빠의 임종을 앞두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목사를 찾다 우리 남편을 생각했단다. 사랑하는 아빠를 떠나보내야 하는 딸의 마음이 다가와 숟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중환자실에 이르렀다. 구원받은 자녀로서 천국에 입성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소망에 찬 메시지로 가족을 위로하고 나오며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른 내 모습을 보았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치 못해 속상하고 침체해 있었다. 평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직도 넘어야 할 많은 과제 앞에 아쉬움과 다급해지는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왜? 언제까지 단련을 받아야 하나?’ 부족한 자신과 함께 흔들거리는 늦가을의 나뭇잎이 겹쳐 비추어졌다.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남편이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기에 우리 내외는 은퇴했다. 평생 몸담았던 일들을 내려놓았다.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제2의 커리어로 집에서 직접 신장 투석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남편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 때문에 세 차례 수술 후 방법을 바꾸어야 했다. 혈액투석에서 복막 투석을 거쳐 홈혈액투석으로. 배, 가슴 캐티터에 이어 팔을 통해 한다. 그러기를 4년이 흘렀고 요즈음 마지막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남들은 3주면 만들어진다는 버튼홀이 석 달이 되어도 이루어질 기미가 없다. 팔뚝이 시퍼렇게 멍들고 혈관 주위가 딱딱해졌다. 있던 자신감마저 사라지고 두려울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물음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 했다. 급하지만 순종하는 믿음으로 마음을 비워 모든 걸 맡기기로 한다. 어제는 딱딱했지만, 내일엔 부드러워져 주삿바늘이 들어가겠지.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통로가 만들어지리라. 태양은 내일 다시 뜬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뭇잎을 다 떨군 나무는 숨을 고르며 영양분을 저장하고 다음 해의 봄을 준비하고 있다.  

이희숙 / 수필가

 

    (퇴고)

 

                                               봄은 올 터이다

                                                                                                                                                 이희숙

 

  감잎이 고운 색으로 물들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황홀한 모습도 잠시인가, 바람이 부니 힘없이 나부낀다. 뒹굴거리며 몸을 뒤척이는 모습에 가슴이 시려온다. 온몸의 진액을 빨아올려 맺었던 열매를 떠나보내고 홀가분한 몸인데 왜 그리움에 떨어야 하나.

 

  아침 식사 도중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딸 친구가 아빠의 임종을 앞두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목사를 찾다 우리 남편을 생각했단다. 사랑하는 아빠를 떠나보내야 하는 딸의 마음이 다가와 숟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중환자실에 이르렀다. 늦었지만 구원받은 자녀로서 천국에 입성할 수 있길. 우리는 그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소망이 담긴 메시지로 가족을 위로하고 나오며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른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맡겨진 일을 감당치 못해 속상하고, 침체해 있었다. 평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직도 넘어야 할 많은 과제 앞에 아쉬움과 다급해지는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 언제까지 단련을 받아야 하나?’ 부족한 자신과 함께 흔들거리는 늦가을의 나뭇잎이 겹쳐 비추어졌다.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남편이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기에 우리 내외는 은퇴했다. 평생 담았던 일을 내려놓았다.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제2의 커리어로 집에서 직접 신장 투석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남편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 때문에 세 차례 수술 후 방법을 바꾸어야 했다. 혈액투석에서 복막 투석을 거쳐 홈 혈액투석으로. , 가슴 캐티터(Catheter)에 이어 팔을 통해 투석한다. 그러기를 4년이 흘렀고 요즈음 마지막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팔에 누관(Fistula) 수술받은 후 안전하고 영구적인 방법을 택했다. 남편의 신장 기능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 보자고 용기를 내었다.

 

  혈액투석은 흔한 방법이지만, 버튼홀(Button Hall)은 한 사람 곧 나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남들은 3주면 만들어진다는 버튼홀이 넉 달이 되어도 이루어질 기미가 없다. 남편의 팔뚝이 시퍼렇게 멍들고 혈관 주위가 딱딱해졌다. 왜일까? 있던 자신감마저 사라지고 두려울 뿐이다.

 

  내 눈의 결함이 이유로 떠올랐다. 20여 년 전 자가면역 체제 질병인 Devic’s로 왼쪽 시신경이 마비되었다. 남아 있는 한쪽 눈의 시력으로 초점을 맞추어 바늘을 정확하게 찌르는 게 어려운가 보다. 한군데만을 같은 위치와 각도로 바늘이 들어가 횟수를 더해가면 버튼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론은 알고 있다. 핏줄이 뛰며 흐르는 통로도 촉감으로 느낀다. 잘될 것 같은데 막상 찌르면 피가 나오질 않는다. 처음엔 남편이 아플까 봐 힘껏 찌르지 못했다. 이젠 독하게 마음먹고 피를 보기 위해 입술을 깨문다.

 

  이런 나의 신체 조건에서 케어 기브어(Care giver)가 되겠다는 시도가 무모한 일이었을까? 불가능으로 여기며 불가능으로 여기며 병원의 간호사에게 맡겨야 하나?  많은 사람이 하는 평범한 방법을 택할걸.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 실타래를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땐 실명의 위기에서 딸의 손에 의지하여 울며 병원에 다녔다. 점자를 배워야 하나? 다가올 최악에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긴 어둠의 터널 끝에 원인과 치료 방법도 모른다던 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한쪽 눈은 회복되지 않았는가. 2년에 한 번씩 운전면허 실기시험(Vision Test)을 치러야 했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일상생활에 불편 없이 지나왔다. 은퇴 후 간호사의 역할까지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직 쓸모가 있다면. 마지막 관문을 잘 통과하길 바란다.

 

  성경 말씀엔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 했다. 급하지만 순종하는 믿음으로 마음을 비워 모든 걸 맡기기로 한다. 어제는 딱딱했지만, 내일엔 부드러워져 주삿바늘이 들어가겠지.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통로가 만들어지리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될 것이다.

 

  나뭇잎을 다 떨군 나무는 숨을 고르며 영양분을 저장하고 다음 해의 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