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의 사역 (Rentalism)

                                                                                                                                                  이희숙

 

 

  남편은 쇠약해진 몸으로 일흔 중반을 버티어 왔다. 그가 아픔을 견디어 낸 일 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곁에 있어 주어 안도하며 감사한다. 가족 중심으로 생일잔치를 열기로 했다.

 

  축하하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한복을 찾아보려 옷장을 열었다. 걸려 있는 한복을 꺼내 걸쳐보았다. 색깔과 디자인이 눈에 거슬렸다. 요사인 동정이 넓어지고 붕어의 배처럼 불룩하던 소매는 일자 모양으로 좁아졌다. 내가 소중하게 여겨 보관했던 한복이 낡은 구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전통한복도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새롭게 디자인되어왔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실용적으로 변화해왔다. 유행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인 게다.

 

  유행을 따라가기에 벅차다. 이 많은 한복을 어떡해야 하나? 행사 때마다 즐겨 입던 한복이 이제는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전락했다. 계속 입을 옷도 아닌데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 한복집을 검색하니 '한복 대여'가 눈에 띄었다. 이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다니. 대여해 입으니 부담 없이 간편하다. 더불어 테이블, 의자, 큰 양산까지 빌려 집 뜰에서 행사를 준비했다. 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이 전해주는 초록 내음이 있어 신선했다.

 

  요즈음엔 리스(Lease)를 더 선호한다. 방송인, 행사 진행자, 쇼호스트, 광고 촬영업체 등이 의상실의 주요 고객이 된다. 적절한 때에 목적에 맞게 옷을 대여해간다. 공채나 면접시험이 있는 날은 몰려드는 준비생들로 붐빈다고 한다. 필요한 목적이나 상황에 맞게 많은 옷 중에서 가장 적합한 색깔과 스타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용 의류, 가구, 작은 소품까지 빌려서 사용하고 부담 없이 반환한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렌트 비용이 덜 든다. 특별 행사 의류, 스포츠, 캠핑 장비는 소유하고 보관하기 위한 비용과 신경 소모가 없어 편리하다. 적절한 때에 목적에 맞게 물건을 대여할 수 있으니 굳이 소유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

 

  뿐만이랴. 자동차도 크레딧이 좋으면 빌려 탈 수 있으니 항상 새 차를 유지 할 수 있다. 먼 거리의 직장을 오가던 딸이 오래 타던 차를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절약하는 정신이 기특하다고 지켜보던 내 마음 한쪽에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딸은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생산량의 부족으로 새 차를 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은퇴하며 세워둔 작은 차를 타고 다니던 중 그 차마저 힘에 겨웠는지 서는 게 아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새 차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딸은 여러모로 유리한 새 차를 리스해 왔단다. 이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었던 것을.

 

  GE 혁명을 본다. 오프라인 산업 생산 시설에 온라인 기술을 적용해서 중요한 산업 시설들이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다. 판매 방식에도 소유하지 않고 사용하려 한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의 생산 설비를 구매해 소유 손실을 감수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구하여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의 중장비까지 대여하여 사용한다는 것이다.

 

  리스나 임대를 즐겨하는 주의를 ‘Rentalism’이라고 한다면 이를 청지기의 사역에 비유하고 싶다. 청지기는 집사(Deakonos)에서 유래되어 사환, 섬기는 자, 일꾼, 사역자, 종으로 주인을 섬기는 자를 뜻한다. 주인은 관리인인 청지기에게 그 소유를 맡기고 지시를 내리면,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하여 재산을 관리한다. 맡겨진 것을 사용하고 나누어주며 감독권을 행하기도 한다.

 

  나 또한 청지기임을 깨닫는다. 사실 우리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물질도 주어진 삶 동안 관리할 뿐이다. 소유욕에서 벗어나자. 물질에는 자기의 것이 있고, 남의 것도 있다. 남의 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청지기로 있을 동안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지혜로운 자도 본다. 현명한 물질 관리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청지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게 현명한 물질관임을 깨닫는다.

 

  물질뿐이랴. 가정에 선물로 주신 사랑하는 자녀도 나의 소유가 아니다. 품에서 자랄 동안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고 안내하는 것이 부모 역할일 뿐이다. 진로 또한 그들이 원하는 의사를 존중해서 선택할 자유의지를 주어야 함을. 가끔 아동학대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 있다. 아이를 위해 체벌한다고 말할지라도 부모가 아이의 소유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생 또한 육신을 빌려 입고 산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겠지. 유효 기간이 지나면 겉 사람은 흙 속으로 돌려보내고 빈 영혼으로 떠나지 않는가. 지혜로운 청지기의 사역이란? 자기 몸과 재능, 물질, 시간, 정력을 바치는 자라야 주인의 인정을 받는다. Rentalism의 사고를 생활 속에 잘 적용해 본분을 깨닫고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하리라.

 

   청지기로서의 크레딧이 창조주에게 인정받을 때 내 낡은 육신도 새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이 아침에] 청지기의 사역

이희숙 수필가

이희숙 수필가

남편은 쇠약해진 몸으로 일흔 중반을 버티어 왔다. 그가 아픔을 견디어 낸 일 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남편이 곁에 있어 안도하며 감사한다.  
 
가족 중심으로 생일잔치를 열기로 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한복을 찾아보려 옷장을 열었다. 그런데 걸려 있는 한복의 색깔과 디자인이 눈에 거슬렸다. 요즘 한복은 동정이 넓어지고 붕어 배처럼 불룩하던 소매는 일자 모양으로 좁아졌다. 내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한복이지만 구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복도 늘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유행을 따라가기에 벅차다. 이 많은 한복을 어떡해야 하나? 행사 때 마다 즐겨 입던 한복이 이제는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계속 입을 옷도 아닌데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 한복집을 검색하니 ‘한복 대여’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다니. 대여해 입으니 부담 없이 간편했다. 더불어 테이블, 의자, 큰 양산까지 빌려 집 뜰에서 행사를 준비했다.  
 
크레딧이 좋으면 자동차도 리스로 빌려 탈 수 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하는 딸은 새 차가 필요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자동차 생산량 감소로 새 차를 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달리 방법이 없어 내 차를 타고 다녔으나 그 마저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얼마 후 드디어 새 차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딸이 리스한 자동차였다.    
 
리스나 임대를 선호하는 것을 ‘렌탈리즘(Rentalism)’이라고 한다면 이를 청지기의 사역에 비유하고 싶다. 청지기는 집사(Deakonos)에서 유래된 말로 섬기는 자, 일꾼, 사역자 등을 뜻한다. 주인이 관리인인 청지기에게 지시를 내리면,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한다. 맡겨진 것을 사용하고 나누어주며 감독권을 행하기도 한다.  
 
나 또한 청지기임을 깨닫는다. 사실 우리의 소유물은 아무것도 없다. 물질도 주어진 삶 동안 관리할 뿐이다. 소유욕에서 벗어나 남의 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청지기로 있을 동안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지혜로운 자도 본다. 살아가면서 청지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물질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물질뿐이랴. 사랑하는 자녀도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고 안내하는 것이 부모 역할일 뿐이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삶 또한 육신을 빌려 입고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겠지. 유효 기간이 지나면 겉 사람은 흙 속으로 돌려보내고 빈 영혼으로 떠나지 않는가. 청지기는 자기 몸과 재능, 물질, 시간, 정력을 바쳐야 주인의 인정을 받는다. 렌탈리즘의 사고를 생활 속에서 잘 적용해 본분을 깨닫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리라. 

이희숙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