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유숙자

젊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부를 때에 ‘자기야’하고 부르는 것을 본다. 결혼 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여보’라는 호칭을 쓰지만, 그것이 쉽게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아이 아빠를 자신의 아버지인 양 아빠라고 부르는가 하면 결혼 전의 호칭 오빠라고 불러 아이로 하여금 촌수를 헷갈리게 한다. 예전 우리 부모님은 ‘여보’라는 호칭을 쓰셨고 연세 드신 후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임자’라고도 했다. 일반적으로 아무의 아버지, 아무의 아빠, 이렇게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느 날 TV에서 <스타 부부 쇼 자기야>란 방송을 보았다. 제목에서 주는 느낌은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출연진은 진행에 도움을 주는 고정 출연자와 초대 손님으로 구성원을 이루었다. 연예인, 방송인, 의사, 운동선수 등 다양하게 출연하여 허심탄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평범한 일상사에서 얽히고설키는 삶의 이야기, 부부간의 지극히 사소한 일로 벌어지는 부부 갈등이 이슈가 되다 보니 사람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자신이 당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그림 약과를 집어들고 말할 기회를 잡는다. 부부 쌍방의 입에서 무슨 말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과장이나 허식 없이 솔직하게 의중을 털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자기야>는 생방송이기에 때로 부부가 판이한 감정의 대립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상대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기에 생기는 견해의 차이나 서운함이다. 배려 이전에 당면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감정의 대립이기에 결과적으로 양쪽 말이 모두 타당성 있다.

성격에 따라 이해의 폭이 넓고 좁음은 있어도 어느 계층의 사람도 인간 본성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대중 앞에서 자신을 노출 시키는 특정인이나 일반인이 살아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는 모두 같다. 관심, 배려, 사랑의 부족이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상대가 무조건 나를 이해해 주기 원하는 그것이다.

 

여자 출연자 중에는 남편의 야속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눈물이 글썽이는 사람도 있고 아내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 남편도 있다. 남편의 엄청난 엔터테이먼트 버릇 때문에 놀라고 아내의 지나친 씀씀이에 자제를 당부한다. 상대방 의중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평소 품었던 불만을 터뜨리기에 때에 따라서는 기상천외할 말들이 튀어나와 시청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이것이 <자기야>가 누리는 효과이고 현실감이다.

 

얼마 전에 아주 재미있게 시청한 <자기야>는 “의사 부부 특집”이었다. 일반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은 선호하는 배우자 조건에 드는 것 같은데 의사 부인이 무슨 불평이 있을까 가 시청자들의 궁금증이었다.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고 앉아 있으니 의료학술회처럼 보였다. 그날의 주제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남편 흉보기’였다.

첫 번째 하소연은, “댁의 남편도 밖에서는 명의, 집에서는 돌팔이입니까” 였다. 아기가 열이 심한데 처치를 소홀히 하고 병원엘 조속히 데리고 가지 않았기에 화가 난 엄마의 마음을 하소연했다.

 

두 번째는 아기를 낳으려고 입원했는데 산과 의사인 남편이 아내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고 분만 후에도 다른 산모에게는 지극 정성이면서 막상 아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는 섭섭함이다. 그 외에 크고 작은 불만, 의사 아내로서 받아야 할 배려와는 거리가 있는 불평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기실 우리가 익히 알기로도 밤에 병원을 찾을 때 당직이 있을 뿐,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아니고서는 날이 밝아야 전문의를 볼 수 있다. 그걸 잘 아는 남편이기에 적절한 처방을 내렸으나 엄마 마음은 안타깝기에 보리차만 먹이라는 남편이 야속했다. 결국, 남편 처방이 옳았지만.

산과 의사도 일부러 아내에게 섭섭함을 주려 했을까. 아마도 멋쩍어서, 누구보다도 아내의 상태를 잘 아는 남편으로서 쑥스러워서 그랬을 것 같다. 보면 답이 빤히 나오는데 아내는 조금이라도 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배움의 많고 적음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성품에 해당하는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찌 보면 이기적인 냄새를 풍긴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기에,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리라. 그를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그 자체가 끊임없이 생산적 행위이므로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까지 풍요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이고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도, 문제도 될 수 있기에 살며 생각하게 되는 ‘자기야’를 보면서 간접 경험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근래에는 전문 분야별로 의사, 약사, 한의사가 출연하여 가려야 할 병원이나 의사, 응급 상황 대처법, 평소 알아 두어야 할 의학 상식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많은 환자 탓에 시간에 쫓겨 자세하게 들을 수 없는 설명 등을 전문의들에게 자세히 듣게 되고 평소에 일었던 궁금증을 풀어 주기에 그 재미가 배가 된다. 오락 프로그램이면서 오락에만 치중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의 보탬이 되는 ‘자기야’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자기야-’! 상대방에게 이런 호칭을 쓸 때가 그렇게 부를 수 있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풋풋한 시기가 아닐가 싶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