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향기 가득히

유숙자

계절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포기 남지 않은 갈꽃 무더기가 안쓰럽다. 세찬 바람에 자지러질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몸부림이 무성했던 여름의 잔영처럼 쓸쓸하다.

여름 싱그럽던 이파리들이 떨어진다. 청명한 햇빛 속에 낙화처럼 지고 있다. 발목 위로 낙엽이 휘감긴다. 다시 태어날 있는 확신이 있어 미련 없이 떨구는 것일까. 낙엽은 바람과 구름과 비의 속삭임을 삭이며 청량한 가을 속에 묻힌다.

 

해마다 추수감사절 즈음이면 웨스트민스터 가든 방문한다. 이곳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시다가 노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분들이 모여 사신다. 1900 이들의 부모님께서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었기에 자연스럽게 신앙의 대를 이어 선교사로 활동했다일제 강점기, 억압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에게 교회와 학교를 세워 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고 암울했던 시기에 희망의 등불이 되어준 고마운 분들.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 말과 문화와 정서에도 익숙하다. 회원 중에는 여학교 선교사에게 교육받은 사람도 여럿 있어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스승의 예를 갖추며 추억담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모른다.

 

선교사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찬송을 부를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내가 어렸을 어머니께서는 찬송가 곡을 영어로 불러주셨다.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던 조용히 불러 주시던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하늘에서 들리는 천사의 노래 같았다. 세상 어느 노래가 그처럼 가슴을 파고들 있을까. 감탄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던 어머니의 찬송 소리가 이곳 선교사님의 음성에서 다시 듣는다.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 있는 찬송가. 어려운 발음의 노래를 좋아해 곧잘 혀를 굴려가며 따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외삼촌께서는 일찍이 신학문을 전수받은 분으로 친구 명과 함께 삼각 청년회라는 신앙 모임을 이끄셨다. 야학을 열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셨고 찬송과 성경을 가르치셨다. 이따금 그곳에 미국 선교사들이 오셔서 영어 찬송을 가르쳤는데 어머니도 모임에 참석하셨단다.

 

예배실로 향하는 발길이 차분해진다. 이곳에 때마다 선교사님의 숫자가 줄어든다. 인연 맺은 십수 년이 지났으니 80, 90 좋이 바라보는 노인들이다. 예배당에는 작년에 웃으며 맞아주시던 J 선교사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사명을 마치고 천국으로 가셨다 해도 함께 나눈 시간과 정든 추억이 있기에 허전한 마음 그지없다.

예배 드리고 오찬을 나누며 준비한 순서가 진행되는 사이 친구와 나는 별관으로 갔다. 지난해까지도 돋보기를 쓰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좋으셨던 배위치 목사님이 근간에 급속도로 시력이 나빠지셔서 문밖출입을 못하신단다. 목사님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잡채, 오이소박이, 김치를 듬뿍 담았다.

 

목사님은 오늘 우리의 방문을 미리 알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서자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힘차게 부르신다. 목사님을 뵈니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안타까워 주춤거렸으나 목사님의 밝은 모습과 찬송으로 이내 평상심을 되찾았다. 목사님은 성품이 쾌활하시다. 손으로 더듬어서 식사하시면서도 한국 음식 예찬론을 펴신다. 시종 유쾌한 음성으로 근저의 생활을 자세히 들려주셨다. 눈이 보이는 불편함 이외에는 건강하시다는 목사님. 한창 젊었을 한국 땅을 종횡으로 누비며 활동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솟는다고 하신다. 헤어지며 악수를 청하시는 목사님의 손이 따뜻했다. 그의 마음처럼. 내년에 다시 뵙게 때는 밝은 눈으로 맞아 주시기를 소망한다는 위로의 말을 남겼다.

 

외지에서 활동하다 본국으로 돌아온 선교사는 미국 정부의 혜택을 일부만 받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셨더라면 편안한 노후가 주어졌을 텐데 땅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사명을 따르느라 지상의 삶이 고달프다. 선교는 순교를 각오한다.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오신 분들이나 단기 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교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란 목숨과 맞바꿀 만큼 위험이 따른다 했다. 언제 누구에 의해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활동이 조심스럽다. 일찍이 선교사님의 부모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순교를 각오하며 복음 전파에 힘쓰셨기에 우리가 지금 편안히 신앙생활을 있다.

석양이 기울 무렵, 선교사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함께 들길을 걷는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들꽃과 마른 바람결에 흩날리는 은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내린다.

 

헤어짐이 아쉬워 우리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미동도 않고 계신다. 바랄 것도 기다릴 것도 없는, 모든 것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한평생을 사신 분들의 여유가 면면히 흐른다. 위로부터 내리는 평안히 같은 모습일까. 고통과 시련과 역경을 모두 거치지 않고는 결코 아름다워질 없는 숭고함. 선교사님들의 남은 삶이 은총과 축복으로 가득하기 기원하며 아쉬운 작별을 남긴다. 들꽃 향기가 늪처럼 고여 있는 웨스트민스터 가든에 어둠이 서서히 스며들고 은은한 호박꽃 불빛이 별처럼 돋아난다.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