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감동

유숙자

아직도 나는 오늘보다 내일을 꿈꾸며 산다. 철이 들어서인가 작은 일들에 곧잘 콧마루가 시큰해질 때가 잦다. 흘러간 명화를 감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예전에 내가 춤추었던 발레 음악을 듣게 때는 가슴이 출렁인다. 비교적 음악을 가까이하는 편인데도 의외의 장소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게 감정의 수위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얼마 , 해변을 따라 세븐틴 마일즈로 여행했다. 주행 시간의 무료함에서 벗어나 차라도 마시려 바닷바람이 시원한 노천카페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카푸아 곡인 솔레 미오 들려왔다. 한낮이 기우는 시각, 주변이 혼잡한 곳이었으나 귀를 찾아든 음악은 청량제처럼 기분이 전환되었다.

솔레 미오는 사랑하는 여인을 찬미한 노래다. 시인 조반니 카푸로(G. Capurro) 폭풍이 지난 빛나는 태양보다 찬란한 나의 태양이 사랑하는 너의 이마에서 빛난다.’라는 내용을 담은 시이다. 나른한 오후를 가르며 들려온 노래는 무덥고 여름날 갑자기 쏟아져 내린 한줄기 소나기였다. 송글 솟아난 땀방울을 식혀주는 산들바람이었다. 비가 멈추고 살짝 내비친 햇살이었다.

 

노을을 가슴이 뛴다. 하루 가장 고운 색채만을 응집하여 황홀이 피우는 , 가슴까지 물들여주는 비경이다. 새벽 노을은 신선함이 있고, 하늘을 사랑의 빛으로 물들이는 저녁노을은 아름다워서 슬퍼 보인다.

칼스배드 여행 때였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한창 달리고 있을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태양이 하늘과 바다에 못다 사랑을 풀어놓은 비길 없이 아름다운 선홍빛으로 물들이며 심연처럼 깊고 엄숙한 바다에 서서히 몸을 눕힌다. 그때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렸다. 바다로 향한 호텔 창문마다 젊은이들이 빼곡히 매달려, 지는 해를 향하여 손을 흔들어 환호한다. 태양과 바다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장렬한 임종을 맞는다.

벤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노인과 환호하는 젊은이들. 노인들은 스러져 가는 일몰을 보며 자신의 여생을 번쯤 의식할 수도 있겠고 젊은이들은 다시 떠오를 미래를 확신할 것이다. 폭의 그림인데도 처지에 따라 현저하게 대비됨을 있었다.

 

꽃을 받을 행복하다.

밸런타인스 데이에 큰아들이 꽃바구니를 놓고 갔다. 금요 찬양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에 커다란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사이에 깃발처럼 카드가 꽂혀 있었다.

 

바빠서 뵙지 못하고 갑니다. 행복한 밸런타인스데이 되세요.’

아들이 아내에게 장미를 사러 꽃집엘 갔는데 마침 꽃집 주인이 각종 꽃을 섞어 꽃바구니를 만들고 있더란다.

 

밸런타인스 데이에 이런 꽃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나요?’ 하고 아들이 물었다.

 

이것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꽃바구니입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중에는 오래전부터 어머니에게 드릴 꽃을 먼저 주문하고 아내에게 꽃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날 나에게 밸런타인스 데이 꽃바구니가 전해지기까지 이런 사연이 있었다. 40 마일을 달려와서 놓고 , 행복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밸런타인스 나잇이었다.

 

우리는 하찮은 것들에 때로 감동하고 마음이 뭉클해진다. 한적한 곳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이 신선하게 가슴에 닿을 , 길가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나온 포기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 바위틈에 위태롭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나 나무 그늘 깊숙한 곳에 백색으로 피어 있는 패랭이꽃을 보았을 가슴이 떨린다. 반기는 사람 없어도 묵묵히 피고 지고 열매 맺는 자연의 순리를 보면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감동인가를 새기게 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감사요, 평범한 일상이 감동일 , 마음에 평안과 안정이 주어짐을 체험한다. 잘사는 삶이란 특별한 삶이 아니라 작은 일에 의미를 두고 보람을 느낄 주어지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향기가 되고, 기억을 남기는 살아 있는 감동이 되고 싶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