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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 여왕과 피테 대제

러시아의 피터스 대제 동상.jpg

                                                                              피터 대제 말 탄 동상


   러시아의 성 피터스 버그에 있는 겨울 궁전을 관람했다. 러시아 말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부르는데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들린다. 북러시아의 수도였던 이 도시에 겨울궁전이 1754년과 1762년 사이에 8년에 걸쳐 지워졌다. 1764년과 68년에 여왕 캐서린(Catherine, The Great) 대제(1762-1796)가 잇달아 작은 규모의 궁전을 또 짓게 되었다. 러시아 황제들의 거주지로, 유명한 건축가들을 동원해 지었다. 길이가 200m, 넓이가 100m, 높이가 30m 이다. 1057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과 1786개의 문과 1945개의 창문으로 이루어졌다. 여왕 황제의 사저로 휴식처로 자리매김했다. 여왕은 이곳에 살면서 유럽과 중동 등 여러 나라로 부터 귀중한 예술작품을 수집해 왔다. 거주지 뒤에 운하를 만들어 보물과 예술작품들을 실어 날았다. 소장품이 계속 늘어 비치할 장소가 부족하여지자 새로운 거주지를 1842년과 51년 사이에 또 지어서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예술 박물관으로 민간에게 공개하게 됐다. 

   겨울 궁전은 3개의 궁전으로 결국 이루어졌다. 실내장식은 모두 금으로 도금하고 섬세하게 조각해서 아름답기가 입으로 형언키 어렵다. 캐서린 여왕의 남편 패트르 대제(Peter, the Great)가 스웨덴과 싸워 승리하자 그 이름을 따서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바닷 가 공원 광장에 세워진 하늘을 향해 치솟은 자세로 말을 탄 페테르 대제의 동상은 위풍당당하고 늠름하게 보였다. 또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페테르 호프(Peterhof)란 여 름궁전을 성 버그 근처에 아름답게 지었다. 

   겨울궁전에는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도 참 많았다. 그중에 특히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레오 날도 다빈치의 ‘레타 마돈나(Letta Madonna’)와 오거스틴 르느아르의 ‘부채를 가진 젊은 소녀’, 폴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자’, 클라우디오 모네의 ‘세인테 아드레세에 있는 정원 안의 숙녀’, 헨리 마티스의 ‘춤’, 빈센트 반 고흐의 ‘라일락 숲’ 등 세계적인 일류 화가들의 유명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국보급 도자기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바닥엔 아름답게 수놓은 페르시안 양탄자 등 사치와 화려함이 극에 달했다. 15세기, 17세기, 19세기 화가들의 값비싼 그림들이 수없이 많았다. 연회실은 무도회장 겸 회의실로도 쓰였고 놓여있는 의자들은 모두 금으로 도금을 해서 번쩍였다. 그 값어치는 한 마디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라고 한다. 

   매일 밤 왕족들과 귀족들과 권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난 후 술 마시고 춤추고 놀았다고 하니 프로레타리아(Proletarian) 계급을 외면한 부르조아(Bourgeois) 계급들의 부패상이 눈에 역역히 들어와 예술작품에 감탄을 하면서도 내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극심한 가난과 농민들이 지주에게 땅을 빼앗기고 농노가 돼어 살아가기가 각박한 세상이 되었었다. 이들을 외면한 소수 권력층의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자, 황제를 신처럼 섬기던 이들이 회의를 느끼면서 그들에게 반감을 품기 시작했고 민심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민심이 천심인데, 이들을 자극한 말크스주의 레닌의 주도하에 공산당 볼셰비키 혁명의 태동이 불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세계제일차대전에서 실패하자 경제가 바닥이 났고 민중의 불평불만이 표출돼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위를 벌리는 노동자들과 농노들에게 제정 러시아가 대포를 쏴 수천 명이 죽게 되자 공산당 볼셰비키 당과 합쳐 1971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다. 겨울 궁전은 11월 7일 함락돼 불이 나 일 부 타게 되었다. 겨울 궁전과 여름 궁전을 관광하면서 러시아의 대하소설 ‘의사 지바고’가 생각났다. 세계 일차대전과 볼셰비키 혁명을 전후 해서 쓰인 유명한 대하소설 ‘닥터 지바고’가 생각난다. 그는 브르주아 계급에 속하는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의 가정에 입양되지만, 혁명의 반동분자로 몰려 쫓겨다니는 신세가 된다. 

   저자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7년에 이 소설을 써서 그 후 노벨문학상의 지명자가 되지만 혁명을 반대하는 내용 때문에 상을 반납해야만 했고 결국 그는 추방까지 당하게 된다. 의사 지바고는 토냐와 결혼했지만, 전쟁 수용소에서 만난 라라를 사랑하게 되는 불륜을 저지르게 되고 결국 비참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의사 지바고는 의사로서도 충성되지 못했고 가정도 지키지 못했고 시인으로서 글 쓰는 일에도 충실하지 못했다. 시대를 잘 못 만나 혁명 와중에서 희생양이 된 셈이다. 여왕 케서린 대제는 루터 교도였지만 개좋하여 러시아 정교회 교도가 되었었다. 남자 편력이 많았고 남편을 폐위시키고 정부와 놀아났었다. 그 정부는 결국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 이렇듯 기독교가 부패하여 세계 최초로 공산당이 생겨나서 자본주의가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를 없애게 된다. 

   중세 면죄부를 팔던 교황청이나 러시아 기독교계를 보면서 많은 교훈을 받았고 크리스천으로서 반듯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