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지 타령


   요즈음 날씨가 갑자기 더워 입맛을 잃었다. 더위를 먹은 것도 아닌데 나이 탓인지 무엇을 먹어도 음식이 맛이 없다. 덕택에 몸무게가 15 파운드가 빠져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학교 운동장에서 땡볕에 운동회 연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더위를 먹어 소화도 잘 안되고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못 먹자 대학교 입시를 앞두고 어머니가 매우 걱정 하셨다. 

   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 나셔서 육모초를 배어다가 한약처럼 다려서 주셨다. 어찌나 쓴지 먹지 않으려고 용을 썼지만 다 먹을 때 까지 옆에서 지켜 보시던 어머니 생각해 억지로 마셨다. 그리고 벼이삭 이슬이 소화가 잘 된다시며 새벽에 논 두렁에 나가셔서 누런 삼배 천으로 벼이삭에 내린 이슬을 훑어 짜가지고 이슬 물을 병에 담아 가지고 오신 이슬물을 음료수처럼 나는 마셨다. 덕택에 병이 나아 공부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 다. 어머니의 지극정성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은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서 어머니가 원하시던 대학에 들어가 효녀가 된 듯 매우 기뻤다. 

   안동에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안동에서 살았지만, 고향은 시골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방학 때 시골 내려가면 어머니는 큰 가마솥에 장작불로 밥을 지어시고 누렁지를 만드시려고 모닥불처럼 타다남은 불로 누렁지를 만드셨다. 간식이 별로 없었던 한국전쟁 직후라 누렁지는 나에겐 즐겨먹던 큰 간식이었다. 밥을 다 푸신 다음 큰 나무 주걱으로 누러 붙은 누렁지를 벅벅 긁어 어머니 손안에서 주먹만한 크기의 공처럼 꼭꼭 눌러 데굴데굴 만들어 주셨다. 보리밥 누렁지 보다 쌀밥 누렁지가 헐씬 맛이 좋았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누렁지가 생각나 마켓에서 사 왔다. 그냥 인위적으로 만들어 파는 누렁지가 있다기에 입맛이 없던 터라 맛있겠지 하며 모처럼 옛 추억에 잠겨 보려고 사왔다. 생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기에 물을 붓고 끓였다. 따끈한 숭늉과 함께 김치와 함께 먹으면 별미이기에 기대를 잔뜩하고 먹었다. 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맛이 옛날 누렁지 맛이 아니었다. 구수한 맛이 훨씬 덜 하고 입안에서 짝짝붙는 쫄깃쫄깃한 옛날 누렁지가 아니어서 실망 스러웠다. 어머니가 만드신 누렁지 생각에 시 한편 썼다. ‘누렁지 타령’ ‘어머니의 손맛으로 구어진/노릿노릿 누렁지의 구수한 맛/그 맛을 내는 사람이 좋다//화려하지도 않고/유별나지도 않고 그저 함께 있으면/마음이 편안한 사람/그 사람이 좋다//도시에서 자란 사람보다/강촌에서 흙 냄새 맡으며/농사짓는 땀 흘리는 사람/그 땀 속에 눈물이 있고 인정이 넘치고/자연의 품에 안기 듯 포근한 사람/그 사람이 참 좋다//엄마는/볼품없는 깡 마른 누렁지/씹을 수록 구수한 맛이 울어나오고/탕을 만들어 숭늉으로 마시면/배 속 깊숙히 흘러 들어가/생수의 강 되어/언제나 흘러 넘친다//뒷맛이 항상 개운하고/구수한 맛과 내음이 내 몸 속에 베어/나도 어느새/엄마처럼 누렁지가 되었다.’2019년 7월 27일, 중앙일보/이 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