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3215623_a7be1ecd52.jpg

14935736831_1836962987_z.jpg

보리밥에 열무김치                              김수영   

 

   보리밥 하면 열무김치가 따라다닌다. 바늘 가는데 실 간다는 말처럼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환상의 별미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에 보리밥과 열무김치가 으뜸을 차지한다. 보리밥 집을 찾아보곤 하지만, 이곳 한인 식당에는 보리밥과 열무김치가 메뉴에 빠져 있어 서운할 때가 많다.   

   올해 내 생일날, 보리밥에 열무김치가 곁들여 나오는 식당을 찾았다며 친한 친구가 나를 불러냈다. 부에나 팍에 있는 그 식당은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아담한 식당이었다. 식사를 메뉴에 따라 주문하면 꽁보리밥과 열무김치는 덤으로 나왔다. 질그릇에 담겨 내오는 꽁보리밥과 열무김치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문식사는 제쳐놓고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비벼서 먼저 먹었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이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친구도 덩달아 계속 보리밥과 열무김치만 비벼서 먹었다.    

   서비스도 괜찮았다. 부족한 듯 싶으면 더 달라는 말도 하기 전에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보리밥에 열무김치라면 아직 그 식당을 따라 올만한 곳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주문한 음식도 맛있다. 무엇보다도 덤으로 주는 이 보리밥과 열무김치 때문에 인기가 대단해서 식사 때가 되면 식당이 꽉 찬다. 속일 수 없는 게 사람들의 입맛이 아닐까. 식당 주인은 이 아이디어 하나로 고객을 왕으로 여겨 대접하는 고객 우대정신 때문에 성업 중 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것이 성공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그 이후, 나는 여러 사람에게 그 식당의 음식 맛을 자랑했다. 누가 보면 그 음식점의 홍보나 광고 대사로 오해받을까 염려가 들 정도로 주위 사람들에게 식당 자랑을 했다. 오늘 점심때 마침 지나던 길이라 그 식당 에 들려 친구도 없이 혼자 식사를 했다. 신문을 보는데 지상(紙上)의 영상들이 고향의 들녘을 떠올려 주었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방해 받지 도 않아 향수에 고스란히 젖어들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추억들이 파도치며 가슴에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학창시절 여름방학이면 나는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농사짓는 광경이 나에게는 그렇게도 평화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남자들이 온 종일 밭이나 들에서 일하게 되면 집에 있는 아낙네들은 더운 점심을 해서 머리에 이고 두 손에 들고 해서 일하는 남정네들에게 가져왔다. 지금처럼 도시락을 싸는 것이 아니고 시루떡 찌는 큰 질그릇에다 보리밥을 가득 담았다. 반찬은 상추쌈, 된장 고추장과 열무김치 등이었다. 들에 있는 고추밭에서 방금 따온 풋고추를 된장 고추장에 찍어 보리밥과 함께 먹는 맛이란 천하일품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친환경 웰빙 최고 건강식, 보약 중의 보약이었다.    

   친척들은 귀한 집 딸이 왔다고 특별히 안동 간고등어를 구워 반찬으로 곁들여 내 놓았다. 그러나 나는 고등어를 건너뛰어 보리밥과 열무김치에만 숟가락이 오갔다. 내 몫으로 흰 쌀밥을 따로 준비 했지만 역시 보리밥만 먹으니 모두를 갸우뚱 해 했다. 보릿고개 그 어려운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이 흰쌀밥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부드러운 이밥을 제쳐놓고 보리밥만 탐하니 이상하게 여길 법도 했다. 그만큼 보리밥이 내 입맛을 돋구고 내 식성에 맞아 어릴 때 길들여진 먹는 버릇이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    

   점심을 맛있게 많이 먹고 나면 식곤증에 졸음이 덥쳐오기 일수였다. 수십 년 된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깔아 논 돗자리는 낮잠을 자기엔 딱 좋은 곳이었다. 매미가 어찌나 시원스럽게 울어대는지 매미 소리마저 단잠을 재촉했다.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하늘을 쳐다보며 고요와 평화 가운데 편히 낮잠들 수 있던 시골 목가적 풍경이야말로 나의 꿈을 키웠고 나의 감성과 낭만을 살찌워 문학으로 이어준 젖줄이 돼주었다. 오염되지 않은 참으로 맑고 아름다운 농촌풍경, 무공해 자연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한참 꿈속에서 헤매며 비몽사몽일 때 저만치서 달려오는 손짓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일어나 뒤돌아 보았다. 시골에 사는 점순이가 나를 찾아와 산 밑 저수지에 가서 함께 수영하자며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얼떨떨한 김에 나는 친구의 손에 이끌리어 저수지까지 갔다. 수영하는 아이들로 저수지 주변은 신이 나 있었다.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친구는 수영을 가르쳐 준다며 나의 손을 잡고 저수지 안쪽으로 살살 나를 끌고 들어갔다. 순간 두려움이 덮치자 나는 무서워 친구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다가 마음과 반대로 몸은 저수지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밑바닥은 갑자기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엄청 깊었다. 깊은 곳으로 빠지면서 헤어나지 못하자 친구는 나를 건지려 하다가 나와 함께 물에 빠져 허우적댔다. 한 번 빠지고 가라앉다 가 두 번을 물 위에 떠오르고 세 번째 물 위로 떠오를 때 누군가가 급히 뛰어들었다. 우리 둘을 건져 모래사장에 끌어내어 많은 물을 토하게 하고 살려 냈다. 우리 큰 언니였다. 익사를 모면한 것은 개성 여자 어머니를 닮은 큰 언니의 용기 있는 민첩함이었다.    언니가 아니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언니 때문에 살아났기에 그 후 언니에게 늘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그런 언니가 연년생 세 아들을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형부가 의사였지만 그도 아내의 죽음에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었다. 우리 형제들에게 모범이 되었던, 큰 언니의 죽음을 보고 통곡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여름철이 되면 시골 그 푸른 들녘에서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먹던 정겨운 추억이 떠 오른다. 언니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이 겹치면서 그 옛날이 아련히 떠오른다. 나를 살려준 언니,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언니. 그 언니가 살아있으면 내가 즐겨가는 부에나 팍의 그 식당에 모시고가 맛있는 열무김치와 보리밥을 대접하련만.    오늘따라 언니가 많이 보고 싶다. 혼자서 먹는 보리밥이라서 그럴까. 먹다가 목이 멘다. 그 맛있는 보리밥이 모래알 씹는것처럼 칼칼하게 느껴져 수저를 놓고 말았다. 언니, 정말 보고 싶은 우리 언니, 어머니를 닮아 인자하고 총명했던 사랑하는 나의 언니. 마음속에 살아있는 언니를 글 속에 담아 그리움을 달래본다. 정성을 다해 글로나마 표현하는 지극히 둔한 붓끝을 감사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을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이곳은 절수소동이 있을 정도로 가물었다. 단비가 내린다. 아, 단비. 언니에 대한 내 그리움이 하얗게 타들어가는 가뭄인데 이번 가을비는  단비. 소리 없이 내 삶에도 내리고 있다. /늘 추억의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