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무궁화 나무를 가슴에 심으며
계속될 줄 알았던 폭우가 그치고 이십여 일 동안 갠 날씨가 이어졌는데 어제부터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온종일 비가 퍼부었다. 캘리포니아는 4년째 가믐에 시달리고 있다. 애타게 단비를 기다리던 터라 비가 와서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기뻤다. 교회에 갔다 와서 외출을 삼가고 집에 있는데 갑자기 개 두 마리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주 요란스럽게 짖어 누가 온 줄 알고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뜻밖에 큰 무궁화 나무가 쓰러져 옆으로 누워 현관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뿌리째 뽑혀 나동그라져 누워 있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한데 겹쳐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사실은 수년 전 폭우로 팜트리가 쓰러 질 때 이 무궁화 나무도 약간 기울어지면서 뿌리가 들어나 다시 흙 속에 잘 묻고 키워 왔다. 결국 올 일이 오고 말았구나 체념하면서 나 자신을 달래어 보지만 자식 잃은 어미처럼 슬픈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겠는가. 그동안 현관 앞에 무궁화 나무 두 그루가 잘 자라고 있었다. 한그루는 진분홍 색깔이고 다른 한 그루는 진홍색 무궁화였다. 나는 분홍색보다 빨간빛을 더 좋아했다. 쓰러져 죽은 나무가 진홍색 무궁화 나무였다. 어찌나 빨간빛이 예쁜지 꽃을 쳐다볼 때마다 마음이 기뻐 쳐다보고 또 쳐다보곤 했다.
나다나엘 호손이 쓴 소설 ‘주홍글씨’에서 여 주인공이 가슴에 단 주홍글씨가 이처럼 예뻤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했다. 그녀는 간통죄의 상징으로 부끄러움의 주홍글씨 ‘A’자를 가슴에 달고 다녔지만 내가 사랑하던 진홍색 무궁화 꽃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색 잎을 주렁주렁 달고 꽃잎이 한 겹인 이무궁화 꽃은 꽃술도 아주 예뻐 참 사랑했는데 소리 없이 내 곁을 떠나다니 허전한 내 가슴 어이하리.
팜 트리와 함께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무궁화 나무인데 친구 잃은 슬픔을 끝내 못 견디고 그 뒤를 따라간 것일까.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꽃이라 유별나게 더 사랑한 것 같다. 뿌리가 많이 뽑혀 다시 심을 엄두도 못내고 톱으로 토막을 내어 쓰레기통에다 버리고 나니 내 살을 도려낸 기분이다. 조국을 떠나 수십 년 살다 보니 고국이 참 그리운데 그나마 무궁화 꽃을 쳐다보면서 향수를 달래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살아왔다. 이 무궁화 꽃을 바라보면서 시 한 수를 써서 읊조리면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가/삼천리 금수강산에 강물처럼 흘러/한 민족의 기상과 얼이 어우러져/무궁화 속에 향기로이 꽃피고 있네…중략....../언제 보아도 어머니처럼 다정하고 포근한 꽃/그 품에 안기고 싶은 향수/나비 되어 너의 향기를 맡으며/네 속에서 살리라.’
뒷마당에 한 그루의 아주 큰 진분홍 색 무궁화 나무가 잘 자라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죽어 나간 무궁화 나무 빈자리가 너무 크다. 내 심장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다. 빨갛게 꽃을 피워내던 무궁화 나무가 눈에 아른거려 아무래도 무궁화 나무를 새로 사다 심어야겠다. 뿌리가 뽑혀 나간 자리가 보기 흉해 흙으로 대강 메꾸었는데도 유독 눈에 띈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조용히 사과나무를 심는다.’라고 한 스피노자의 말처럼 나도 기어이 무궁화 나무 한 그루를 꼭 심고 말겠다. 김정은이가 미사일을 쏘아대고 핵 실험을 하고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어도, 상처 난 마음 밭에 예쁜 진홍색 무궁화 나무를 심어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
가며 오며 말 없는 벗이 되어 내 눈짓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 읽어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처럼 곱게 물들이는 너의 심성을 닮고 싶다. 저 멀리 눈 덮인 산에 내 시야가 머문다. 그 산 넘어 그리운 내 조국의 품이 몹시 그립다. 무궁화 나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어도 내 사랑하는 조국은 영원히 내 영혼 속에 살아 숨 쉬리./미주중앙일보, 열린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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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옮겨 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