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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에티오피아에서 선교사역을 할 줄 상상도 못했어요.”
 

장은혜 선교사(GMS 에티오피아)를 만나는 사람들은 선교사라는 직업과 ‘은혜’라는 이름에서 그녀가 모태신앙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장은혜 선교사는 이화여대 입학 당시만 해도 선교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평범한 영어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캠퍼스에서 만난 CCC 선배를 통해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고 주님을 위해 평생 헌신할 사람을 배우자로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곧이어 응답이 나왔다. 총신신대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편 박종국 선교사를 만난 것이다.
 

“믿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저 또한 예수님에게서 멀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주님께 평생 헌신할 사람을 남편감으로 고려했어요. 그러던 중 우리 남편을 만났어요. 덕분에 선교라는 평생의 사역에 몸담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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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혜 선교사와 남편 박종국 선교사.

 

박종국·장은혜 선교사는 선교지로 에티오피아를 선택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혔다. 장 선교사 부부는 1993년 선교지 답사를 갔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직후였던 에티오피아는 내전으로 인한 환자들이 즐비했고, 부랑자가 넘쳐났다. 찌는 무더위에 거리엔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시장에 가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하지만 남쪽 도시 아와사, 딜라에서 왜 에티오피아에서 사역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기도하는 청년들 눈에 비친 달빛과 평생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이 불씨를 키운 노 선교사 부부 덕분이었다.
 

“아와사 방문 중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서 200여 명의 청년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들의 검은 눈에 비춘 달빛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이어 딜라에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에티오피아에서 사역하는 하워드 브란트 선교사 부부를 만났는데 큰 감동을 받았어요. 노 선교사님 부부를 보면서 우리도 저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박종국·장은혜 선교사는 왕성교회의 파송을 받아 1994년 에티오피아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그들의 사역지는 무슬림 거주지역 짐마였다. 장 선교사 부부는 공산화로 무너졌던 교회와 신학원 복원의 사명을 띠고 사역을 시작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집회를 열고, 우물을 파고, 주일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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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선교사가 교회 개척에 집중했다면, 장은혜 선교사는 교육사역에 매진한다. 교육이야말로 에티오피아를 변화시켜 복음의 땅을 이루게 할 도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짐마신학교에서 시작해 에티오피아 복음주의 신학대학교, 에티오피아 신학대학원을 거쳐, 현재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교에서 제자를 양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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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은혜 선교사는 모교 이화여대 스크랜튼상 위원회로부터 지난 6월 5일 ‘2025 스크랜튼상’을 수상했다. 조선의 여성 교육의 길을 개척했던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처럼, 장은혜 선교사도 에티오피아의 크리스천 리더를 세우고 있으니 의미 있는 수상이 아닐 수 없다.24-03-10-1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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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

크리스천 리더를 키우고 있는

장은혜 선교사가 스크랜튼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24-03-10-16.jpg